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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르비에 페스티벌 참관기 Part 4
마지막 글에서는 참관 이후의 소회와, 향후 음악 페스티벌에 (특히 베르비에) 참석하시려는 분들을 위해 간단한 후기를 적으려고 한다. 앞선 글도 그렇지만 애호가 입장에서 쓴 글이라 전문성이 떨어지는 부분은 양해 부탁드린다.
- [[2025-07 Verbier Music Festival (3)]] : 공연 후기 (2)
- [[2025-07 Verbier Music Festival (2)]] : 공연 후기 (1)
- [[2025-07 Verbier Music Festival (1)]] : 패스티벌 소개 & 도착
### 왜 음악 패스티벌인가?
유럽 음악 페스티벌을 꿈꾸게 된 건 박종호님의 [유럽 음악축제 순례기](http://pungwoldang.kr/bbs/board.php?bo_table=basic_service&wr_id=31814&page=363)를 읽으면서다. 시애틀은 자연이 아름답고 여러모로 살기 좋은 도시지만 클래식 공연이 많지 않아, 여행을 갈 때마다 현지 공연을 찾아다니곤 했다. 그러다 문득 음악 페스티벌이라는 특별한 형태의 음악 감상에 눈을 돌리게 됐다. 여름 휴가와 음악 감상을 한데 엮을 수 있다면 가족 모두에게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란 생각이 들었다.
여행 계획은 가족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짰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중심에 두고, 음악의 도시 비엔나와 이탈리아 북부의 매력적인 도시들을 엮어 일정을 만들었다. 비엔나에서 시작해 베르비에에서 첫 공연들을 즐기고, 토리노와 제노바를 거쳐 밀라노까지 둘러본 뒤 다시 베르비에로 돌아오는 여정이다. 가족들은 필자만큼 음악을 많이 듣지 않으니 페스티벌 공연곡들로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가족과 미리 들어보며 공연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탄생과 가치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탄생 이야기는 정말 흥미롭다. 1991년 스웨덴 출신으로 음악 관련 비즈니스에서 수십년 경력을 쌓은 마틴 엥스트뢰엠(Martin T:son Engstroem)이 스키 마을 베르비에를 방문했을 때, 이 한적한 알프스 산골 마을이 "알파인 탱글우드"가 될 수 있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젊은 음악가들이 함께 살고, 연습하고, 공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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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비에 페스티벌의 창립자 마틴 엥스트뢰엠 ([출처](https://www.verbierfestival.com/en/musician/engstroem-martin/))
설립자 엥스트뢰엠과의 [인터뷰에 따르면](https://theartsdesk.com/classical-music/10-questions-verbier-festival-founder-martin-engstroem) ([한글 인터뷰](https://auditorium.kr/2024/06/%EB%B2%A0%EB%A5%B4%EB%B9%84%EC%97%90-%ED%8E%98%EC%8A%A4%ED%8B%B0%EB%B2%8C-%EC%84%A4%EB%A6%BD%EC%9E%90-%EB%A7%88%ED%8B%B4-%EC%97%A5%EC%8A%A4%ED%8A%B8%EB%A1%AC-%EB%88%88%EB%B6%80%EC%8B%A0-%EC%97%AC/)) 그의 핵심 비전은 "친밀함이 화려함보다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공연 예술 커뮤니티가 친밀한 산악 리조트에 있는 것... 홀을 나서면 익명이 되는 도시가 아닌" 곳을 원했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의 독특한 매력 중 하나는 "Rencontres Inédites"(이전에 한 번도 함께 연주한 적 없는 만남)라는 프로그램이다. 잘 알려진 연주자들이 즉석에서 만나 새로운 조합으로 실내악을 연주하는 건데, 이런 '깜짝 콜라보'는 베르비에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이다.
베르비에가 다른 페스티벌과 차별화되는 또 다른 특징은 **베르비에 페스티벌 아카데미**라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매년 60개국에서 900여 명이 지원해서 108명만 선발되는 까다로운 선발 과정을 거쳐 13세부터 30세까지의 젊은 음악가들을 육성한다. 엥스트뢰엠의 비전은 "베르비에가 경력의 시작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 음악계의 '다보스'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이런 교육적 접근은 실제로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랑랑, 알리사 바일러스타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 등이 베르비에에서 경력을 시작했고, 2025년 페스티벌에서도 젊은 음악가들의 뛰어난 기량이 두드러졌다. 베르비에의 진정한 매력은 이런 "민주적 공존"에 있다. 젊은 음악가들이 아이콘들과 같은 무대에 서면서 서로 배우는 [아스펜 패스티벌에서](https://www.aspenmusicfestival.com/events/calendar) 영감을 받은 컨셉을 스위스 알프스에 구현하고 있다. (산중이라는 위치도 비슷하다)
### 베르비에 페스티벌 참석 팁
공연 예매는 일찍 시작하는 게 좋다. 유명 연주자의 공연은 빨리 매진되기 때문에[^1], 꼭 보고 싶은 공연을 포함한 플렉스 패키지를 구매하면 (콘서트 7개 이상) 나머지 공연을 필요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할 수 있다. 숙소는 두 주요 공연장과의 거리를 고려해 선택하되, 전자레인지 같은 편의시설 유무도 체크하자. 베르비에의 아시아 식당은 저녁에 여는 일식집 하나밖에 없고 인당 4-5만원은 써야 식당에서 밥을 먹을 수 있으니, 종종 요리를 하려는 분들은 숙소 시설을 꼭 확인해야 한다.
베르비에까지 가는 길은 제네바 공항에서 기차를 한번 갈아타고, 내려서는 케이블카나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처음엔 복잡해 보이지만, (미국은 공항에서 주로 택시/우버를 타기 때문에 특히 낯설었다) 막상 경험해보면 스위스 대중 교통의 놀라운 효율성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모든 교통수단은 제시간에 출발하고, 실내는 깨끗하고, 창밖으로 보이는 호수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은 아름답다. 다만 짐이 많다면 [에어포터](https://airportr.com/) 같은 짐 배달 서비스 이용을 고려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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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비에는 케이블카를 타고 가야 하는 산골 마을이다 ([구글맵](https://www.google.com/maps/place/%EC%8A%A4%EC%9C%84%EC%8A%A4+1936+Val+de+Bagnes,+%EB%B2%A0%ED%9D%90%EB%B9%84%EC%97%90/@46.0948088,7.1804868,11311m/data=!3m1!1e3!4m6!3m5!1s0x478ecfcef7a6a973:0xffde3e9c0d278891!8m2!3d46.0960814!4d7.2285512!16zL20vMDZ5XzZi?entry=ttu&g_ep=EgoyMDI1MDgwNS4wIKXMDSoASAFQAw%3D%3D))
실제 패스티벌에서는 하루에도 3-4차례 공연이 있는데,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경험상 하루에 최대 2회 정도가 적당하다. 특히 가족과 함께라면 공연 전후로 충분한 여유를 두어 감상을 나누고 휴식할 시간이 필요하다. 공연 외에도 스위스 알프스의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하이킹, 산악자전거, 패러글라이딩 등 다양한 야외 활동을 즐길 수 있다. 베르비에에서는 북부 이탈리아나 남프랑스 여행도 가능하고, 몽트뢰 같은 스위스 도시들로의 당일치기도 가능하다.
### 클래식 음악 감상에 대한 주관적인 의견
클래식 음악의 세계는 넓고 깊다. 하지만 평소엔 좋아하는 곡만 듣게 되고, 특히 공연장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필자가 경험한 뮤직 페스티벌의 매력은 새로운 레퍼토리를 발견하는 즐거움에 있었다. 평소 잘 듣지 않을 레퍼토리의 공연도 일정에 맞으면 듣게 되기 때문이다. 그럼 의미에서 페스티벌 전후로 곡을 찾아 듣고 공부하는 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새는 더욱이 콘서트 프로그램을 넣으면 AI가 플레이리스트를 자동으로 만들어주니 안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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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주요 작곡가 한사람만 파도 보통 수백곡의 레퍼토리가 있으며 같은 곡에 대해서도 매년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 음반이 나오는 장르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중년의 취미 (1) 음악 듣기|음악 감상 관련 글]]에서 언급했듯이 이런 방대한 레퍼토리 덕분에 평생 새로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이 클래식의 매력이다. 그리고 원하는 공연을 원하는 시점에 보기란 쉽지 않은 일인데, 그럼 의미에서 뮤직 패스티벌은 특별한 경험이다.
[[음악 듣기 실전편|중년의 취미 (2) 음악 듣기 실전편]]에서 언급했듯이 필자는 평소 오디오와 공연이 보완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음반으로만 접했던 아티스트의 공연이 근처에 잡히면 설레는 마음으로 예약을 서두르게 되고, 보통 공연에는 여러 곡이 연주되니 잘 모르는 곡이라도 일단 예매하고 공연 전까지 집중적으로 들어보는 경험이 음악 감상의 깊이를 더해준다. 이번 패스티벌에서 몇년치 공연을 한꺼번에 보았으니, 돌아와서 다시 이 곡들을 열심히 들을 것이 기대된다.
이번 페스티벌에서 다시 한번 크게 느낀 점은 '유명세'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의 경우 평균 70-100프랑 정도의 가격에 티켓을 구했는데, 이태리에서 스위스에 오는 날 예정보다 좀더 일찍 도착하게 되어 아르헤리치, 키신, 마이스키라는 세기의 거장들이 함께하는 공연을 200프랑(한화 약 30만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보았다. 하지만 긴 운전 후 피곤한 저녁에 전혀 모르는 곡을 듣다 보니 아무리 대가들의 연주라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려웠다.[^2] 이에 비해 낮에 맑은 정신으로 보았던 학생 연주자들의 실내악 연주는 훨씬 더 깊은 감동을 주었다.
이와 관련해서 우리나라의 클래식 음악 감상 문화에 대해 아쉬움도 느꼈다. 이번 페스티벌에서도 임윤찬의 공연만 보고 떠나는 한국 단체 관광객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아무리 임윤찬 팬이라고 해도 스위스까지 와서 한국 연주자의 공연만 보고 돌아가는 건 좀 아쉽지 않나. 물론 한국에서는 임윤찬 티켓을 구하기가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뮤직 패스티벌을 좀 더 다양한 음악과 연주자들을 접하는 기회로 삼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나라건 미국이건 유명 연주자에 지나치게 편중된 공연 관람 문화는 조금 안타까운 부분이 있다.
### 마무리: 음악과 여행의 만남
베르비에 페스티벌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음악과 여행이 만났을 때의 시너지였다. 앞으로도 여름 휴가 계획을 세울 때 해당 지역의 음악 페스티벌을 먼저 확인해보려고 한다. 유럽에는 베르비에 외에도 잘츠부르크, 바이로이트, 루체른 등 다양한 음악 페스티벌이 있다. 각각의 페스티벌이 고유한 매력과 특색을 가지고 있어서, 앞으로는 매년 다른 페스티벌을 찾아보는 것도 좋겠다. 베르비에에 영감을 주었다는 [아스펜 패스티벌도](https://www.aspenmusicfestival.com/events/calendar) 눈에 들어온다.
베르비에 페스티벌은 단순한 음악 공연이 아닌, 음악과 자연, 그리고 사람들이 만나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음악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는 세계 정상급 공연이 많이 펼쳐지지만, 스위스 알프스에서 열리는 음악 패스티벌이라는 특별한 경험을 많은 분들께서 하셨으면 하는 바램이다. 아울러 향후 기회가 왼다면 평창 대관령 통영 등 한국에서 열리는 음악 패스티벌에도 참석해보고 싶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이번 베르비에 페스티벌 참석의 가장 큰 성과는 필자만의 취미였던 클래식 음악이 온 가족의 공통 관심사가 되었다는 점이다. 페스티벌에서 돌아온 후 8살 딸 리오나가 "아빠 쇼스타코비치 틀어주세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며 깜짝 놀랐다. 평소 피아노를 배우고 있고 바이올린도 배우고 싶어하던 딸에게 실제 연주자들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업무에 지친 아내에게도 음악이 주는 위안과 감동을 함께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전에는 필자 혼자 콘서트에 가거나 집에서 음악을 들을 때도 가족들은 각자의 일을 하곤 했는데, 이제는 함께 음악을 듣고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늘어났다. 음악이 단순한 개인적 취미를 넘어 가족 간의 소통과 유대감을 깊게 하는 매개체가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을 계획하고 살제로 다녀오는데 적지않은 돈과 시간이 들었지만 돈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 아니었을까?
[^1]: 사실 임윤찬 공연을 제외하면 키신 / 아르헤리치의 표도 올해초까지 남아있었으니, 매진은 드문 편이긴 하다.
[^2]: 공연의 감동을 위해서는 공연의 질도 중요하지만, 공연장의 환경 / 레퍼토리에 대한 감상자의 사전 준비 등이 더 중요하지 않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