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_차관_김성렬,_소방공무원_정해성_2016년_12월_9일_제6회_지방행정의_달인_시상식_시상_(7).jpg]] ## 1. 도시는 타고 있었다 서울은 타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불을 보지 못했다. 아니, 보았다고는 하나, 말할 수는 없었다. 불은 구조물이 아니라, 말의 틈에서 시작됐다. 경림스퀘어—도봉구 창동역 사거리 한복판, 지하 2층에서 지상 8층까지 이어진 복합건물. 3월 15일 오후 3시 58분, 누군가가 “연기가 보여요”라고 말한 순간, 이미 불은 사방팔방의 통로를 통해 확산되고 있었다. 누군가는 그 불을 ‘리튬이온 배터리 열폭주’라고 불렀고, 누군가는 ‘지하 주차장 통풍구의 역류 현상’이라 불렀다. 하지만 정해성은 그것이 하나의 이름을 가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는 그것을 ‘어떤 방향’이라고 불렀다. 혹은, ‘어느 날 갑자기 말을 잃은 공기’라고도. 정해성이 현장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전기는 이미 바삐 울리고 있었고, 관할 소방서의 지휘팀은 현장 외벽에서 이 상황이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정해성은 알았다. 불은 통제가 아니라, 인지의 문제였다. 건물의 복잡한 구조는 설명되지 않았고, 전기 배선도는 누락돼 있었으며, 화재경보는 이미 연기로 인한 감도 오류로 작동을 멈춘 상태였다. 불은 지하 주차장의 EV차량에서 시작되어, 차량 3대의 폭발음 이후, 승강기 샤프트를 타고 4층까지 수직 상승했다. 4층부터는 공기 중 부유먼지와 열류가 결합하면서 백드래프트가 형성됐고, 그 위로는 강화유리 천장을 통과해 열기가 상층부로 솟아올랐다. 그는 그 상층부의 구조를 알지 못했지만, 불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몸을 움직였다. 로프를 꺼냈고, 카라비너를 조였다. 한쪽 무릎은 오래전 연골이 닳아 움직일 때마다 뼈가 마찰음을 냈지만, 그는 그 통증을 말이 아닌 반사신경으로 처리했다. 그는 6층 외벽을 타고 올라가면서, 이 건물이 어떤 유년의 반복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니, 그는 실제로 그 유년을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연기를 마시는 아이의 얼굴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잃어버린 문장의 뉘앙스, 말이 되지 못한 기억의 파편, 침묵 속에 봉인된 속삭임 같은 것들이 그에게 “이곳을 안다”고 말해주었다. 구조복 속 그의 몸은 피로 젖어 있었고, 오른손의 관절은 이미 움직이지 않았지만, 그는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가 아니라 ‘그의 복사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 속 정해성은, 그 정해성 그 자신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 그날의 정해성이 되어 연기를 타고 올라가고 있었다. 지휘권 전환 요청은 단순한 명령 체계의 변경이 아니었다. 그것은 말해지지 않은 문장의 주어를 바꾸는 일이었다. “여기 노원구조대장 정해성. 전 지휘권 요청한다.” 말은 그렇게 나왔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쓰여야 했다. “나는 지금 누군가의 죽음을 내 어휘로 옮기겠다.” 불은, 단지 산소와 연료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을 가진 화자의 문제였다. 무전을 통해 그는 구조 우선 지휘를 선언했고, 옥상에는 21명이, 내부에는 파악되지 않은 수의 사람들이 고립되어 있다는 정보가 들어왔다. 5층 찜질방에는 유리벽과 천장 때문에 구조 진입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사다리차는 도심 내 전선과 구조물 탓에 4층 이상 각도를 확보하지 못했다. 그는 로프 구조를 선택했다. 선택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무릎이 시키는 대로였다. 4시 21분. 그는 6층 외벽에 매달려 있었다. 아래에서는 여전히 폭음이 들려왔고, 그의 머리 위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그 사람의 손이 아니라, 손가락의 굽힘 각도를 보았다. 거기서 “살고 싶다”는 말보다 더 긴 문장을 읽었다. 구조란 언어 이전의 언어, 손의 절규로부터 시작하는 행위였다. 그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아이는 산소포화도 70% 이하로 떨어져 있었고, 고글 너머의 눈은 이미 초점을 잃고 있었다. 그 순간, 백드래프트. 유리창이 깨지며 내부의 불씨가 바깥 공기와 만나 폭발했다. 정해성은 반사적으로 아이를 감쌌고, 그의 오른손은 다시 찢겼다. 피가 안면부를 타고 내려왔지만, 그는 기어이 아이를 내려보냈다. 그날 구조한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기억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그러나 그들 중 어떤 이는, 훗날 이런 말을 했다고 전해진다. “그 사람의 얼굴이 기억나진 않아요. 근데, 이상하게… 그때 제가 꺼낸 숨이, 그 사람이 준 거였어요.” 서울은 그날 다시 타고 있었다. 그러나 꺼진 건 불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문장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장들은 지금도, 이 구조대장의 손끝에서 계속 타고 있다. 복사되고, 복제되며, 다시 기억된다. 매일. 매 시간. 숨을 쉴 때마다. 구조란, 그런 것이다. ![[u3732612478_arsonist_--sref_httpss.mj.runra54FtF2peo_--profil_a6e26fb3-5126-4c8c-8cff-128c43b6ce1c_2.png]] ## 2. 연기에는 척추가 없다 나는 도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도시는 이미 말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도시에 오기 전의 숨, 그 무명(無名)의 기류에 대해 말한다 태초에 불이 있었다는 말은 틀렸다 태초에 연기가 있었다 구의동 철근 구조물 안에서 누군가 담배를 던졌다 그 순간, 구조도 방화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연기의 감촉이었고 그 연기에는 척추가 없었다 너는 서울의 구조도를 본 적 있는가? 동대문은 백화점이 아니라 방화의 선율이었고 중곡동에는 구급차가 아닌, ‘구원받지 못한 건축적 감정’이 주차되어 있었으며 경림스퀘어 지하의 멀티탭은 문장이 아닌 전류의 시였으며 그 시는 짧게 불타고, 문장이 되지 못한 채 사라졌다 경찰이 말하길, 그는 “현주건조물방화”를 저질렀다고 했다 유영철, 류永哲 그 이름은 오히려 담배보다 가벼웠고 그의 방화는 건물을 태운 것이 아니라 “의심의 구조를 해체하는 일”이었다 의심은 연기보다 느렸고 연기는 척추가 없었고 척추가 없다는 말은, **기억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법은 불을 명명하려 했고 도시는 그 불을 ‘방화’라 불렀다 그러나 나는 안다 그 불은 인간의 체온보다 먼저 발생했다는 것을 공덕동 재개발 현장에서 붕괴된 계단을 타고 내려오던 그 냄새를 그 냄새에는 날카로운 고백이 있었다 “나는 불이 아니었다. 나는 너희가 말하기 이전의 공포였다” ![[u3732612478_arson_and_crime_--sref_httpss.mj.runF2G8kTIvkeI_-_f22db273-51d0-45c0-9795-810678b28566_3.png]] 연기에는 척추가 없다 그러므로 너는 그것을 잡을 수 없고 경계할 수도 없다 연기는 건물을 떠다니며 사람을 입는다 유가족은 말하지 않는다 아이의 코에 들어온 그 마지막 공기층이 서울 구치소 독방 천장의 균열과 어떻게 닮아 있는지를 그 침묵은 증언이다 그 증언에는 문법이 없다 문법이 없다는 말은, 그것이 시라는 뜻이다 어느 날 구조대원이 말했다 “우리는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말을 끊는 것이다” 그 말은 비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해했다 꺼지지 않는 말은 연기가 되고 연기는 다시, 불이 되며 그 모든 윤회 속에서 단 하나 빠진 것은 척추였다 기억의 척추 그것이 꺾일 때 도시가 탄다 그러니 너는 묻지 마라 “누가 불을 질렀는가?” 그보다는 이렇게 물어야 한다 “불은 언제 인간이 되었는가?” “방화는 언제 구조의 언어를 훔쳤는가?” “무명의 냄새는 언제부터 도시의 문장이 되었는가?” 그리고 마지막 질문— “그 모든 것의 척추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나는 대답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기록한다 붕괴 5초 전, 불은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연기가 먼저 들어왔고 그 연기는 척추 없이 숨을 쉬었다 그 숨이 지금도 도시의 창틀 사이를 걷고 있다 가장 조용한 형벌처럼. ## 3. 연기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 정해성이 도착했을 때, 건물은 이미 말을 잃은 상태였다. 지시도 없고, 순서도 없고, 규율이 없었다. 대신 연기가 있었다. 유리 벽을 감싸는 회색 막, 내부를 완전히 무화(無化)시키는 검은 기체, 그리고 고통이 조형한 실루엣들. 사람들은 통유리 창틀에 부딪혔고, 옥상엔 구조를 기다리는 실루엣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그 모두의 밑, 지하 주차장 통로에서 솟구친 검은 불길이 복도와 벽면을 핥으며 공조 덕트를 타고 위로 치고 올라가고 있었다. 진입은 선택이 아니라 채무였다. 정해성은 산소통을 멘 채, 그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지금 누구를 구조하려는가.” 그 자신조차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없었던 대답이었다. 그는 기억을 안고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며 기억을 생성하고 있었다. 불은 인간의 형태를 잡아먹는 데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단지 진동만이 있었고, 열과 압력과 무게가 사람의 존재를 지운 자리에 놓여 있었다. 열폭주가 발생했다. 그는 그것을, 벽면이 순식간에 하얗게 번쩍이며 무너져내리는 장면으로 기억하고 있다. 연기는 맹목적이었다. 그 어떤 도덕도 기술도 논리를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총체적 무화, 통째로 ‘사라짐’이었다. 그리고 그 사라짐 속에 있는 존재들—정해성의 동료, 아이, 고립된 사람들, 그리고 어쩌면 ‘그 자신’—은 구조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구조되어야만 의미를 갖는 존재였다. 그는 이를 알았다. 그것이, 구조라는 것의 비밀이었다. 찜질방 진입은 지옥과의 문턱이었다. 이중 유리문, 고무패킹이 틈을 막고 있었고, 그 안에서 사람들은 몰려 있었다. 일산화탄소의 농도는 측정 불가 수준이었다. 그는 문을 열기 직전 한순간 자신에게 질문했다. “내가 이 문을 연다면, 나는 몇 명을 구조하는가? 아니면, 이 사람들은 내가 열기 때문에 죽는 것인가?” 그것은 생존의 역설이었다. 한 아이가 문 안에서 창문을 두드리고 있었고, 손바닥의 붉은 자국이 유리를 뚫고 그의 정수리에 닿았다. 정해성은 도끼를 꺼내들었고, 문을 부쉈다. 안의 공기와 밖의 공기가 섞이며 와르르 무너진 듯한 함성이 들렸고, 몇 명은 쓰러졌으며, 그는 가장 가까운 아이를 먼저 끌어냈다. 아이는 기절해 있었다. 그는 아이의 심박수를 확인했고, 동시에 자신의 손이 무감각하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그때서야 그는 부상을 자각했다. 손목의 열상, 보호장비 틈으로 스며든 3도 화상, 그리고 목 언저리에서부터 시작된 어지러움. 그러나 그는 계속했다. “나중에 기억하겠다. 지금은 기억하지 않겠다.” 이 말은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u3732612478_arson_and_firefighter_--sref_httpss.mj.runEnWd4vP_61ca3045-4307-4bfa-bf61-f068965dd25d_3.png]] 옥상에서는 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람은 언제나 구조의 적이다. 로프를 타고 하강하는 이들이 고정되지 못했고, 헬기 소음은 지시를 삼켰다. 옥상 모서리에는 다섯 명이 있었다. 한 노부인은 구조하러 온 젊은 대원에게 자신의 손녀를 먼저 데려가라 했다. 정해성은 그 순간, 자신의 아내 얼굴을 떠올렸다. 오래전 떠나보낸 딸의 얼굴이 그 위에 겹쳐졌다. 그것은 잘못된 기억이었지만, 틀림없이 정확했다. 그는 노부인의 손을 잡고 말했다. “당신도 내려가셔야 합니다.” 그리고 로프를 이중 고리로 걸어 그녀의 몸을 고정했다. 그 순간 바람이 거세졌고, 그는 자신의 발목이 미끄러졌음을 알았다. 펜스를 잡았다. 허공이 흔들렸다. 그는 흔들리는 공기 속에서 잠시 자신의 존재가 공중에 매달려 있음을 자각했다. 그리고 그가 들은 것은, 누군가 그를 “대장님”이라 부르는 소리였다. 그 소리는 허공을 찢고 들어왔다. 누군가 그를 호출하고 있었고, 그 호출은 그가 다시 그 자리에 붙들리게 만들었다. 진입, 구조, 후퇴. 모든 동작은 반복이었다. 그러나 반복은 결코 동일함이 아니었다. 그는 매 진입마다 자신이 어떤 과거의 자신과 조금씩 달라져 있음을 알았다. 처음 들어갔을 때는 구조대장이었고, 두 번째는 구조 요청자였고, 세 번째는 사망자였고, 네 번째는, 아이였다. 그는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누구인지 설명하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그 무명(無名)의 상태에서 그는 가장 명확한 형태의 인간이었다. 타인의 고통 속에서 생성되는 자기. 사라진 이름 속에서 드러나는 의미.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났을 때, 그는 구조대 차체에서 혼자 호흡기를 벗고 있었다. 손이 떨렸고, 입 안에는 그을음의 맛이 남아 있었으며, 손가락 끝이 붕괴된 철근 틈에서 구한 목걸이 하나를 쥐고 있었다. “기억될 수 없는 이름이 구조될 수 있는가.” 그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리고 답했다. “기억되지 않아도 구조는 의미가 있다.” 그는 그제야 울었다. 그것은 울음이 아니라, 진동이었다. 몸 전체가 떨렸고, 떨림은 곧 그의 이름이 되었다. 그는 다시 구조복을 입었다. 그것이, 그가 연기로 돌아가는 방식이었다. ## 4. 너는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서울역 지하도 입구에서, 구더기 들끓는 시신 옆에 펼쳐진 성경은 출애굽기 33장.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그 구절엔 손때가 묻었고 그 손은 이미 썩어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죽은 자가 이름을 버렸는지 산 자들이 이름을 버렸는지 묻지 않았다. 묻지 않음은 가장 오래된 구조다. 민기섭은 방화를 저질렀고 응위엣은 말없이 눈물을 흘렸다. 둘 다 말이 어눌했다. 한 사람은 대한민국 표준어를 쓰지 못했고 한 사람은 대한민국 법을 쓰지 않았다. 둘 다 성경을 들고 있었으며 하나는 “나는 죄인입니다”를 다른 하나는 “죄송합니다”를 — 구조자가 침묵했다. 왜냐하면 그날, 구조자는 낙원을 몰랐기 때문이다. “손가락 있어요?” “손꾸락 업써요.” 그 말의 진심은 의사의 눈에 도달하지 못했고 배합된 양파, 파, 마늘과 함께 분쇄기에 갈려 육개장에 섞여 나갔다. 누가 먹었을까? 그 손가락이 들어간 국을 누가 끝까지 다 마셨을까? 그 식당의 국물은 오늘도 뜨겁다. 아주 뜨겁다. 그러나 그것이 ‘국’인지 ‘눈물’인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사람이 죽은 것 같다. S아파트 717호.” 무전기 너머로 들리는 이 말은 선고가 아니라 해방이었다. 탈북자는 거기서 술에 취했고 삼촌은 거기서 월북을 했고 당신은 거기서 응급처치를 망설였고 구더기들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죽은 그의 얼굴엔 “그리움”과 “불신”이 굳어 있었다. 그를 구조한 것은 파리였다. ![[u3732612478_rescuer_and_the_rescued_--sref_httpss.mj.runOjwH0_143eb56f-5691-4941-8cbb-aa6c113172c4_0.png]] 그날 나는 방화범의 무릎 위에 무릎을 겹치고 앉아 있었다. 그는 내게 묻지 않았다. “왜 오지 않았나?” 나는 내게 묻지 않았다. “왜 가지 않았나?” 나는 질문하지 않는 자다. 나는 구조자다. 구조자는 묻지 않는다. 묻는 자는 기록자가 되며, 기록자는 죄인이 되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병동. 두 마디 없는 손가락이 “죄송합니다”를 쓰려다 “죄인입니다”로 변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체계다. 법이 그것을 강요하지 않았고 제도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았다. 당신은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구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신도, 그 불 안에서 한 번쯤 구조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랑이 죄가 되는 나라에서는 구조는 방화보다 느리다. 그리고 방화는 기도보다 빠르다. 민기섭은 교도소에서 편지를 쓰지 않았다. 그는 펜을 받지 못했으므로. 응위엣은 이혼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주지 등록증을 받지 못했으므로. 그리고 너는 그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너는 구조자의 옷을 입었지만 그날, 너는 불을 끄지 않았다. 너는 문장을 지웠다. ![[musunset_Chinese_firefighters_in_the_fire_Holding_a_water_canno_8cf466cf-f6da-430c-a1f9-f3abbb605900.png]] ## 5. 불을 지핀 사람들 민기섭이 처음 불을 생각한 건 그가 이수정을 사랑하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는 그녀를 품에 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그녀가 품은 절망까지 대신 타고 싶어 했다. 그래서 그는 사랑을 고백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언젠가, 그녀가 고요하게 혼잣말처럼 내뱉던 한 마디를 평생 기억했다. “이 세상엔 꺼지지 않는 게 딱 하나 있어요. 불이에요. 사람 마음은 언젠간 다 식는데, 불은 식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타요. 제 안에도 그게 있는 것 같아요.” 민기섭은 그때 웃지 않았다. 그의 내면에서 뭔가가 부풀어 올랐고, 그 무언가는 언젠가 발화할 인화성 구절로 남았다. 그는 불을 지른 것이 아니었다. 그는 그녀를 대신해 불에 뛰어들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구조되지 못한 언어였다. 법정은 그것을 “현주건조물 방화치사”라 불렀고, 언론은 “이해할 수 없는 역설적 사랑”이라 불렀다. 정해성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구조 현장에서 검은 연기를 뚫고 나온 불에 탄 이들의 몸을 보며, 그들의 눈동자에서 지워지지 않는 두려움의 방향을 읽었다. 그것은 건물 안에 갇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갇힌 감정의 밀실이었다. 그리고 그 밀실에는 항상, 어떤 불이 있었다. 이수정은 살아남았다. 정해성은 그 사실을 구조 이후 알았다. 그녀는 민기섭의 이름으로 혼인신고를 했고, 어떤 날은 기자들에게 “그 사람은 불이 아니라 나를 선택한 거예요. 나 때문에 불이 시작된 게 아니라, 나 때문에 멈출 수 있었던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끝내고 건물 옥상에 올라 담배를 피웠다. 연기는 천천히 그녀의 얼굴을 휘감았고, 그녀는 그 연기 속에서 과거의 어떤 오후, 민기섭이 자기를 바라보던 눈빛을 떠올렸다. 그 눈빛에는 온기가 없었다. 대신 거기에 있던 것은 **지워지지 않는 책임감의 껍질**이었다. 그는 사랑받기보다 용서받고 싶어 했다. 이수정은 그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너무 늦게. 정해성은 민기섭이 자수를 하러 온 날 그를 마주했다.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채 앉아 있던 민기섭은 그를 보자 웃었다. “내가 낸 불, 꺼졌어요?” 그는 그렇게 물었다. 정해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고글 너머로 민기섭을 바라보았다. 그 안엔 무너진 자존감도, 파괴된 윤리도, 광기의 잔재도 없었다. 그저 오래된 피로감과… 이상하리만치 맑은 한 점의 빛이 있었다. “그 여자는 아직도 나를 기억하겠죠?” 민기섭은 말했다. “내가 누구였는지는 몰라도, 내가 어떤 온도였는지는 기억하겠죠?” 정해성은 그 순간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모든 구조자는, 타인의 절망을 온도로 기억한다. 정해성이 구조했던 그 건물, 민기섭이 불을 지른 그 자리엔, 책상이 있었고 창문이 있었고,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탈출하지 못했다. 유리창은 깨지지 않았고, 유도등은 꺼져 있었고, 문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모두 일산화탄소에 질식했다. 살아남은 사람은 단 한 명, 창문을 망치로 깨고 뛰쳐나온 사무장이었다. 그는 “도저히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몰랐다. 연기가 들어올 때까지는, 단순한 언쟁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이 불은 예고 없이 시작된 것이 아니라, 그 누구도 불이라 인식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정해성은 그 말을 듣고, 오래전 자신이 구조하지 못한 한 아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그 아이도, 죽기 전까지, 자기가 죽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민기섭은 나중에 말했다. “내가 불을 지핀 건 맞아요. 하지만 그 불은 내가 아니라, 우리 둘의 말이 지핀 거였어요. 다만 나는 그 말들 속에서 유일하게 연료가 된 존재였던 거죠.” 그는 그 말을 하며, 차분하게 물을 마셨다. 그리고 묻는다. “당신도 누군가 때문에 불을 지피고 싶은 순간이 있지 않나요?” 정해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신, 그날 불길 속에서 꺼낸 한 사람의 심장을 떠올렸다. 그 심장은 아직 살아 있었고, 너무 빨리 뛰고 있었고, 너무 어린 것이었다. 그는 그 심장이, 말보다 더 정확한 대답이라 생각했다. 이수정은 법정에서 “그 사람은 죄인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죄를 미워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 죄가 저에게 남긴 것이 사랑이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법정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다. 유족들은 그녀를 증오했고, 언론은 그녀를 두 얼굴의 연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정해성은 그녀가 가장 고요한 구조자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 누구도 그녀를 구조하지 않았고, 그녀는 그 누구도 구조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말 한 마디가 민기섭이라는 이름을 끝내 무너뜨리고 다시 세웠기 때문이다. 구조란 때로 누군가를 살리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죄를 끝까지 지켜보는 일일지도 몰랐다. 정해성은 오늘도 구조 현장으로 간다. 연기가 가득한 계단, 어두운 창문, 꺼지지 않는 비상등 속에서 그는 누군가의 이름을 기억하려 애쓴다. 하지만 구조가 끝나고 나면, 그는 그 이름들을 잊는다. 왜냐하면 그 이름들이 사라질 때, 대신 타오르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죄책감. 침묵. 남겨진 사람들. 그리고, 꺼지지 않는 불. 민기섭은 사라졌다. 하지만 정해성의 손끝엔 여전히 연기가 묻어나고 있었다. 구조란, 죄를 끄는 일이 아니라, 죄를 껴안고 다시 불 속으로 들어가는 일인지도 몰랐다. 그렇게 불을 지핀 사람들의 이야기는, 오늘도 구조자들의 몸 속에서 조용히 타고 있다. ![[u3732612478_firefighters_and_love_--sref_httpss.mj.runJ3RqyMM_b956e5e3-c458-40e4-b734-4764a1e4d9ca_2.png]] ## 제6장 나는 당신을 불속에서 안았습니다 그날 아침 출동지령은 “심정지 환자, S구 반지하” 였고 나는 심장을 짚었고, 너는 목을 맸고, 그 집엔 네 늙은 부모가 말 없이 앉아 있었다. 그들은 울지 않았다. 슬픔은 이미 지난달 도시가스요금처럼 이월된 후였다. 나는 가슴을 압박했고, 너는 가슴을 닫았고, 심장은 펌프질을 거부했다. 죽음은 항상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살아야 했다. 출동 후 돌아온 센터엔 마대걸레가 있었고 TV에선 영결식이 나왔다. 그들은 말했다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의 시신을 발견한 건 같은 팀 A였다. 그리고 A는 다음날 출근하지 않았다. A는 죽었다. 출근 복장 그대로 집에서, 조용히, 스스로의 구조를 포기한 채로. 그 누구도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스스로 불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동기였다. 그의 유서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 ‘아무 말 없음’은 구조신호였다. 그러나 조직은 그 침묵을 충성으로 오독했고 그 죽음을 순직이 아닌 개인사로 분류했다. 그들은 ‘영웅’이라 말하며 화마와의 전투 장면을 보여주었고, 나는 아무 말 없이 그 영상을 켜놓은 채 다시 걸레질을 했다. A의 얼굴이 걸레 속에 묻혔다. 그날 밤 내 아이의 숨결을 확인하며 나는 문득 두려웠다. 모든 아이가 죽은 줄 알았다. 손목 동맥을 짚어 살았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우리는 구조자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죽음과 자고, 죽음과 먹고, 죽음을 안는다. 나는 불을 끈다. 그러나 불은 껐다가도 돌아온다. A는 돌아오지 않는다. 나는 기억한다. A가 마지막으로 했던 말— “출동 보고서, 그거, 오늘도 쓰지 말까?”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불속에 들어가는 건 그날 그의 몫이었으니까. 나는 그의 등을 밀었다. 나는 그를 불속에서 안았다. 그러나 그가 불인 줄은 몰랐다. A는 화마가 아니었다. A는 화마를 끌어안았던 자였다. A는 살아 있는 재였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온도를 확인하지 않았다. 구조자도 체온을 잃는다. 그 누구도 그를 구조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그가 불인 줄 몰랐기 때문에. 나는 당신을 불속에서 안았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불이었다. ![[u3732612478_firefighter_--sref_httpss.mj.run525irdKqPKU_--pro_29376bfe-78d9-47c2-ba10-f179b4c62db2_0.png]] ## 7. 남겨진 자들의 선택 정해성은 그날 오후 3시 42분, 도봉구 경림스퀘어 복합건물 인근 노고산로를 가로지르던 비상차로 위에서 멈췄다. 12층 발코니에서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 그 아래로 짙은 흑연의 기둥이 솟고 있었다. 그는 무전을 멈추고 한동안 그 광경을 바라봤다. ‘화염’이 아니라 ‘연기’가 문제였다. 구조 통계상,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실내 화재 사망자의 70% 이상은 직접적인 열기가 아니라 다량의 연기 흡입으로 목숨을 잃는다. 부산 기장군 아파트에서 자매가 숨졌던 사고도, 결국 에어컨 전선 단락으로 시작된 연기가 아이들의 기도를 막았다는 것이 국과수의 결론이었다. 정해성은 그날 구조대장의 몸이 아니라, ‘남겨진 자’의 몸으로 불 속에 들어갔다. 화재 발생 지점은 건물 내 2층 헬스장 여자 탈의실 뒤편이었다. 전열기구가 꽂힌 멀티탭에서 출발한 불씨가 가연성 매트를 타고 빠르게 확산됐고, 천장과 바닥 사이에 깔려 있던 플라스틱 단열재는 고온에 녹으면서 스티렌 가스를 내뿜었다. 그 연기는 불꽃보다 빠르게 계단실을 점령했고, 스프링클러는 작동하지 않았다. 정해성이 나중에야 확인한 바로는, 해당 시설은 완공된 지 18년이 지나 소방청의 긴급화재안전조사 대상에서 제외되었고, 당시 기계실에서는 스프링클러 배관 내 수압이 기준 이하였으며 배출밸브가 장기간 열려 있었다. 실수의 축적이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은 불이 꺼지고 나서야 드러났다. 구조는 그 실수의 결과를 온몸으로 지우는 일이었다. 민기섭은 자수를 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정해성이 경찰로부터 들은 진술 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 “나는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그는 불이 붙은 공간에서 홀로 걸어 나왔고, 사람들이 매달리던 방화문을 그대로 닫고 나왔으며, 비상계단 창문을 통해 제 발로 뒷마당으로 내려와 있었다. 그의 외투에는 아직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손바닥은 붉은 얼룩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는 무릎을 꿇지 않았다. 그리고 이수정은 그런 그와 함께 혼인신고를 하겠다고 말했다. 구조대장이 처음 들었을 때, 그것은 ‘모독’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이후에 밝혀진 사실은 또 다른 파국을 내포하고 있었다. 화재 직전, 민기섭은 이수정의 연락을 받고 자살을 시도하려 했다. 구로구 신도림동 월셋집에서 번개탄을 피웠고, 거기서 이수정이 그를 꺼내 끌고 온 것이 경림스퀘어 2층의 탈의실이었다. “숨겨줘.” 그녀는 그에게 말했고, 그는 커튼을 쳤고, 바닥에 눕고, 불을 질렀다. 정해성은 그 순간부터 불이 ‘사건’이 아니라 ‘표현’일 수 있다는 사실과 싸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현장에서 그는 불이 실수로 번지는 모습을 보아왔다. 휴대용 가스버너의 폭발, 단열재의 인화, 무너진 케이블 배선, 그리고 대피를 막는 불법창고. 부산 반얀트리 호텔 화재에서도 연기 흡입으로 사망한 노동자 여섯 명은 출구가 막힌 1층 집기류 뒤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이 화재에서는, 그가 만난 최초의 사망자는 누군가를 기다리며 커튼 뒤에 누워 있던 여자였다. 연기에 잠긴 채, 아무 말도 없이. 정해성은 구조 도중 발견된 그 시신을 꺼내던 순간, 마치 그녀가 자신이 꺼내지길 기다렸다는 기이한 감정을 느꼈다. 그녀의 손은 벽지를 향해 뻗어 있었고, 검게 그을린 커튼 한 귀퉁이에는 나뭇잎 같은 윤곽이 남아 있었다. 마치 그녀가 불이 자신을 덮도록 허락했다는 듯이. 나중에 민기섭은 “불은 죄이기도 하지만 사랑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정해성은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분노했다. 그러나 그의 분노는 곧 무력함으로 바뀌었다. 그는 그날 저녁 도봉소방서 회의실에서, 고개를 떨군 채로, 도봉경찰서 형사에게 이렇게 말했다. “불은… 누군가의 인생을 감추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그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해하려 했다. 이수정이 구조된 이후, 병원에서 진술을 거부하며 창밖을 바라보던 그 모습은, 구조대장이 살아남은 자를 바라보는 눈과 닮아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말하지 않았고, 그 침묵은 가장 크고 진한 연기처럼 정해성의 가슴에 남았다. 화재가 진압된 다음날, 현장 정리에 들어간 정해성은 잿더미 속에서 태우지 못한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804호. 그 방은 불이 시작된 2층과는 관계없는 곳이었고, 대피를 마친 사람들 중 한 노인이 흘리고 간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러나 그 열쇠를 들고 있던 순간, 정해성은 처음으로 자신이 ‘불이 아닌 자’가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구조란 단지 생명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불이 남긴 ‘이름’을 지워내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열쇠를 서랍 속에 넣고, 다음 근무표를 꺼냈다. 남겨진 자로서 해야 할 선택은, 계속 불 속으로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가 도봉소방서 복귀 후 처음으로 가르친 후배에게 전한 말은 다음과 같았다. “불을 미워하지 마라. 불은 우리가 구하는 사람들보다 먼저 들어가 있다.” ![[u3732612478_firefighter_--sref_httpss.mj.runk50qeTUhmvo_--pro_7d448ab5-a8db-43e0-8d30-c6e17d44a95c_3.png]] ## 8. 발화지점은 침묵이었다 불이 시작된 곳은 멀티탭이 아니라 그 위에 쌓여 있던 말 없는 서류철이었다. 코드를 꽂은 건 사람이었지만, 그걸 뽑지 않은 것도 사람이었다. 예산보고서. 화재안전점검표. 서명 없이 올라간 회의록. 안건 없이 진행된 회의. 침묵은 마른 종이였다. 우리는 한 장씩 서랍에 넣고 잠겼다. 사람들은 불이 플러그에서 시작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기억한다. 그날, 정전은 보고되지 않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정전을 말하지 않는 법을 배웠다. 말하면 책임이 되기 때문이었다. 발화는 죄였다. 그러나 침묵은 죄가 아니었다. 그날 매트리스는 바닥에 직접 놓여 있었고 스프링은 절연되지 않았으며 벽에는 합판을 덧댄 구조물이 복도까지 침범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불법’이라 말하지 않았다. 합법은 종이 위에 있고 불법은 말해질 때에만 존재했다. 그러므로 그 방은 말해지지 않은 구조물이었고 그러므로 그 불은 말해지지 않은 불이었다. 나는 물을 뿌렸다. 그러나 불은 말의 형태로 번졌다. “책임자 누구야?” “조사 나왔대.” “방송 나가고 난리야.” “이번엔 중대재해래.” 그러나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우리가 무전기 두 개를 쥐고 있었다”고. “현장엔 둘의 지휘관이 있었다”고. “헬기는 정지했고, 펌프차는 진입하지 못했다”고. “계단엔 피난자 대신 카페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고. 그건 말해선 안 될 말이었다. 그러므로,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음은 침묵이었다. 그리고 침묵은 산소였다. 그날 나는 불속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말하지 않았다. 그녀의 목에는 초등학생 이름표가 달려 있었다.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았고 그녀는 나를 바라봤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내가 구조한 것은 그녀의 몸이 아니라 그녀의 침묵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발화지점이었다. 몸이 타오르기 전 목소리가 꺼지는 그 순간. 숨을 들이마시기 전 단어가 끊어지는 그 입구. 불은 목소리를 가졌다. 그러나 불보다 먼저 도착한 것은 침묵이었다. 불은 침묵의 가장자리에서 점화되었다. 그래서 나는 안다. 이 도시의 모든 발화지점은 침묵이다. 모든 단락은 말해지지 않은 전기다. 모든 구조요청은 도달하지 못한 시도다. 그리고 나는, 그 시도들 위에 물을 뿌린다. 그러나 물은 침묵을 끄지 못한다. 물은 불을 끌 수 있지만, 그 불은 다시 침묵으로 번진다. 나는 안다. 그 발화지점은, 지금도 어딘가 말하지 않는 사람의 입속에 숨어 있다. ![[hammy484_humanoid_lioness_dressing_in_military_decoration_anime_eabe9c18-f899-4c93-84bb-80eb9bdba1b4.png]] ## 9.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 서울의 불은 꺼지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외견상 연기를 멈추었을 뿐, 실은 계속 타오르고 있다. 정해성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불을 끈 적이 많았지만, 한 번도 꺼졌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화염은 언젠가 사라졌지만, 그 열기와 냄새는 그의 폐와 기억, 손끝에 남아있었다. 그것은 감각의 파편이었고, 제도 밖의 잔류였고, 문장으로 쓰이지 못한 어떤 구조 요청이었다. 그날도 그런 하루였다. 중랑구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연기 감지기가 울렸고, 출동대는 11분 만에 현장을 정리했다. 현관 앞 가열기기 위에 올려놓은 향초 때문이었다. 불은 번지지 않았다. 피해 없음. 복귀 완료. 그러나 정해성은 이 간단한 보고서 안에서 어떤 떨림을 느꼈다. 향이란 원래 연기의 전신이고, 그 연기는 기도를 자극한다. 기도는 불이 도달하기 전, 감각이 보내는 마지막 요청이다. 그가 출동하지 않았던 그날 밤, 그는 조용히 그 골목을 걸었다. 그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은 집 앞에 오래 서 있곤 했다. 그의 귀는 열을 먼저 느꼈고, 그의 눈은 연기를 보지 않고도, 타는 냄새의 밀도 변화를 읽었다. 구조요청이 없는 곳에서조차, 그의 손은 늘 어떤 문고리를 잡고 있었고, 그의 발은 계단의 울림을 통해 건물의 위상적 균열을 파악했다. 왜냐하면 꺼지지 않는 불은 늘 제도 바깥에서 시작되고, 제도보다 늦게 기록되기 때문이다. 그는 기억한다. 이준상과 같이 출동했던 노원구 상계동의 어느 아파트. 그곳에서 두 아이가 사망했다. 불은 작았고, 단락은 흔했다. 연기가 문제였다. 문틈으로 스며들어 방 전체를 채운 연기. 스프링클러는 없었고,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구조는 늦었고, 부모는 없었고, 기록은 짧았다. 그러나 정해성은 그 짧은 기록 안에서 끝없이 연기를 들이마셨다. “다량의 연기 흡입.” 그것은 죽음의 원인이 아니라, 사회의 감각불능에 대한 경고였다. “경미한 화재.” “초기진압 완료.” “잔불 정리 후 귀소.” 정해성은 이런 문장들을 종종 고쳐 쓰고 싶었다. 그것은 기술이 아니라, 망각을 위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하고 싶었다. “이 불은 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아직 다른 형식으로 계속 타오르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구조대장이었고, 보고의 언어는 결코 감정의 문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입을 다물고, 그 대신 다시 그 장소를 찾았다. 그는 화재를 거부하는 불을 보았다. 자가복구되는 전선, 수분에 의해 자동으로 꺼지는 발화점, 사람이 먼저 반응하여 큰 불로 번지지 않은 작은 연기들. 그러나 그는 그런 화재를 더 두려워했다. 왜냐하면 그런 불들은 단 한 번도 공식적으로 “불”로 명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언어가 도달하지 못한 곳에서만 존재하는 감각의 부유물이었고, 정확히 그 지점에서 구조자는 가장 외롭게 호출된다. 그가 두려워했던 것은 대형 참사나 무너지는 천장이 아니었다. 그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기록되지 않은 불”이었다. 사람들의 옷깃에 스며든 매캐한 냄새, 벽지 아래 생긴 그을음의 미세한 분화, 피난 훈련이 없던 건물의 밀실감, 그리고 조용히 꺼진 것으로 처리된 스위치 너머의 잔열. 그 모든 것이 정해성에게는 살아 있는 화재의 변주였고, 꺼지지 않은 구조요청이었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이 강의한 지방소방학교의 교실에서 이렇게 말했다. “모든 구조는 한 문장에서 시작됩니다. 그 문장은 늘 완전하지 않죠. 단어가 빠지고, 주어가 불명확하며, 피동태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구조되지 못한 문장을 마저 써야 하는 사람들이에요.” 수강생들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 말은 교탁 위의 구조복 안에서 느릿하게 타올랐다. 그에게 구조란, 언제나 과거의 반복이었고, 미래의 유예였다. 꺼진 불이 남긴 온도의 기억, 불타지 않았지만 냄새로 존재한 위험, 그리고 매뉴얼로는 포착되지 않는 그 침묵의 조각들. 그는 그것들을 **‘기억의 방재지대’**라 불렀다. 공식적인 사망자도 없고, 화재진압 도구도 쓰이지 않았으며, 복귀가 빠른 출동들. 그러나 그곳엔 아직도 꺼지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것은 집기류에 남은 탄화물, 바닥에 번진 주방기름, 그리고 구조자 본인 안에 남은 ‘아직 도착하지 못한 무전’이었다. 그의 몸은 그것을 잊지 않았다. 침대에 누워 있을 때도, 무릎 뒤편에 열감이 맴돌았다. 비상계단을 올라가는 꿈을 꾸었고, 그 꿈에서 도달한 옥상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자신이 꺼뜨린 불이 정말로 꺼졌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러니 그는 매번 현장을 되짚었고, 다시 그곳을 찾아가 그을음의 결을 만졌다. 그에겐 그 작업이 구조였다. ‘구조되지 못한 문장들’을 다시 읽는 작업. ![[u3732612478_a_lot_of_firefighters_--sref_httpss.mj.runZ6F0v15_c532ac75-1b32-461d-a902-a484752189a3_0.png]] 그리고 어느 날, 그는 이런 기록을 남긴다. > “나는 불을 끄지 않는다. 나는 꺼지지 않은 것들 곁에 앉아 있는 사람이다.” 서울시의 방재센터 회의에서 그는 무언을 유지했다. 통계가 제시되고, 예산이 설명되며, 효율성과 응답률이 검토되었다. 그러나 정해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순간, 그는 느끼고 있었다. 회의실 외벽의 미세한 바람결, 에어컨 실외기의 온도 차이, 오전 11시 12분경 스프링클러 오작동 알람이 있었던 지하주차장의 이중 천장 아래의 열기. 그 모든 것이 말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불이 꺼지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다.** 정해성은 존재의 소각로를 본 사람이다. 그것은 몸이 타는 것이 아니라, **감각이 연소되는 것**이었다. 침묵이 불타고, 망설임이 연기되고, 기억이 발화한다. 사람들은 말했다. “그래도 다행이네요. 큰일은 아니었으니.” 그러나 그는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불이 조금 더 타오른다고 느꼈다. 다행이라는 말은 언제나 **이미 타버린 것을 지운다.** 그래서 그는 구조자가 아니다. 그는 잊지 않는 자다. 불은 사건이 아니라 감정이었고,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그 감정의 탄소화된 형태**였다. 그는 인간의 구조 요청을 다 들은 적은 없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그 구조 요청 중 다수는 문장으로 완성되지 못하거든요. 울음이나, 눈빛이나, 그냥 발밑의 온도로 남아 있을 뿐이죠.” 그리고 정해성은 끝내 이렇게 말한다. > “나는 아직도 그 구조요청을 다 듣지 못했다. > 왜냐하면 불은 꺼지지 않았고, > 나는 아직 모든 문장을 다 읽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날 밤, 그는 다시 연기가 감지된 어느 주택가 근처를 걷는다. 출동은 없었다. 누군가가 냄비를 올려놓고 잠들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인덕션을 끄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에. 누군가는 무전기를 누르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나 정해성은 걷는다. 그 모든 **“일어나지 않은 사건”들** 곁에서, 꺼지지 않은 감각으로. 그의 걸음은 무겁지 않다. 그러나 그의 폐는 여전히 미세한 탄화물의 냄새를 품고 있다. 그의 손은 다시 어떤 문을 두드릴 준비가 되어 있다. 그의 귀는 아직 문장으로 다 완성되지 않은 구조요청의 진동을 듣고 있다. 그리고 그가 묵묵히 응답하는 소리는 이것이다. “나는 꺼지지 않은 것들을 구조하러 간다.” “나는 구조되지 못한 문장 속에서 불을 찾는다.” “나는 아직도, 그 구조요청을 기다리고 있다.” ![[u3732612478_sad_firefighters_in_grief_--sref_httpss.mj.runVCn_48445652-ba13-4d7d-b008-17e674de1ed1_3.png]] ## 10. 구조되지 못한 문장들 문장이 구조되지 않았다. 어떤 문장은 발화되었고, 어떤 문장은 불 속에서 꺼졌으며 어떤 문장은 구조되기를 기다리다 무전기 너머로 삭제되었다. 삭제된 대원이 있다. 그의 이름은 호출되지 않았고 그의 출동기록은 복구되지 않았으며 그의 마지막 무전은 백색 소음으로 기록되었다. “이동합니다” 다음의 공백은 전산망의 지연 때문이 아니라 누군가의 망각 때문이었다. 그리고 정해성은, 그 삭제된 호출음을 붙잡고 있었다. 그는 구조대장이었고 동시에 구조되지 못한 문장이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 채 매번 새벽 3시에 출동했다. 불은 꺼졌고, 사람은 죽었고, 기록은 남았으나 그 자신은 호출되지 않았다. 민기섭은 끝내 불을 지폈다. 그러나 그는 죄인이 아니라, 누군가가 구조하지 못한 문장이었다. 그를 번역한 이는 없었고, 그를 체포한 이는 있었지만, 그를 껴안은 이는 정해성뿐이었다. 그날 옥상에서 정해성은 그에게 로프를 내리지 않았다. 대신 한 문장을 건넸다. “내가 너를 구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것이 민기섭의 자백보다 더 오래 불탔다. 이수정은 혼인신고서를 제출하며 문장이 되기를 택했다. 그녀는 불의 기록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했다. 그러나 아무도 묻지 않았다. 그 혼인신고서가 종이 위에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의 꿈속에 있었는지. 정해성은 구조되지 않았다. 그는 매번 마지막으로 옥상에 도착했고 항상 하나의 손만 내밀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손을 붙잡지 않았다. 그는 스스로를 꺼내지 못한 채 모든 사람을 꺼내려 했고 그의 이름은 결국 호출되지 않은 문장들 속에 묻혀버렸다. 그는 도심 속 구급차의 경적 소리에 반응하지 않고 이제는 호출번호보다 빠르게 아이의 죽음을 예감하는 법을 배웠다. 그는 더 이상 인간이 아니었고 더 이상 구조대장도 아니었다. 그는 마치 무언가를 되감는 듯한 반복의 구조물이었다. 기억하라. 모든 불은 꺼진 뒤에도 타고 있다. 매트리스 속의 냄새, 아이의 산소포화도, 택시보다 빠른 구급차에 욕설을 퍼붓던 이름 없는 자. 그 모두가 구조되지 못한 문장이다. 그리고 정해성, 그는 더 이상 출동하지 않는다. 그는 출동되고 있다. 그는 호출된다. 그는 여전히 도착하지 않은 채 이야기 속에 남아 있다. 그는 이야기의 끝이 아니라 그 이야기의 삭제선 아래 남겨진 지워지지 않는 문장이다. 불은 꺼졌다. 그러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호출음은 여전히 울리고 문장은 여전히 도달 중이며 삶은 여전히 불속에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 문장을 구조하지 않는다. 그저 불속에 안아둔다. 그의 이름과 함께. 그의 무전과 함께. 그의 침묵과 함께. 정해성. 그는 구조되지 못한 문장이다. ![[u3732612478_happy_firefighters_and_citizens_--sref_httpss.mj._083f11a2-44f5-487f-8227-6398cca840dc_1.png]] > [!summary] 관련 문서 > * [[이준상, 마지막 구조대원(2025)]] > * [[Lee Yoon-jung_ko_20250814]] > * [[소방관 백정현 평전(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