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3732612478_A_warm_professional_Korean_female_psychologist_co_d08ffd90-06ce-4a1d-9c08-d1ca79322f39_3.png]]
## 1. 불 속에서 소모되는 남자들
서해시의 밤은 종종 낮보다 밝다. 해무가 항만의 조명을 부드럽게 번지게 하면, 바다는 거대한 반사판이 되고, 그 위로 경광등의 푸른 원이 넓게 퍼진다. 서해소방서 3층 상황실 유리창에도 그 빛이 밀려와 한박자 늦게 출렁였다. 모니터에 떠 있는 지도에는 석유 탱크, 컨테이너 야적장, 하역 장비, 오래된 목조 주택들이 색점으로 박혀 있었다. 도시의 연소물 목록이었다.
변하영은 처음 그 지도 앞에 섰을 때, 불이 아니라 ‘역할’이 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현장마다 산소·연료·점화원의 삼각형이 있는 것처럼, 이 조직의 남자들 곁에는 기대·평가·허세가 촘촘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불이 커질수록 공기가 빨려 들어가듯, 기대는 책임을 끌어당기고, 평가는 자존감을 말려 올려 걸어 둔다. 허세는 그 틈을 메우는 임시 지지대였다. 무게를 버티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지만, 누군가 기대는 순간 먼저 부러지는 부속.
그녀는 신분을 밝히지 않았다. 다른 곳에서처럼, 여기서도 먼저 들어간 것은 ‘진짜 이름’이 아닌 ‘현장 이름’이었다. 기록용 명찰에는 “변윤”이라고 적혀 있었다. 일선 대원들은 그를/그녀를 외부에서 파견된 “정서안전 담당”으로만 알았다. 표정은 조용했고, 메모는 빠르고, 질문은 짧았다. 무엇보다 현장 리듬을 흩뜨리지 않았다. 그게 첫째 규칙이었다. 관찰하되, 흐름의 부속이 될 것.
“자, 곧 빵 울릴 겁니다. 지금부터 말을 줄입니다.”
소방위 최상도가 낡은 스피커에 낀 먼지를 손톱으로 쓸어내며 말했다. 대원들의 말투는 현장으로 갈수록 건조해졌다. 농담은 대개 타인의 약점을 중심으로 떠돌았다가, 출동벨이 울리면 순식간에 꺼졌다. 평소에는 가벼운 공격성이 집단의 결속을 확인하는 방식이었지만, 현장 들어가면 그 공격성은 ‘화재’와 ‘시간’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
신규대원 신유건은 눈을 감고 장비 목록을 떠올렸다. 방화복, 공기호흡기, 열화상카메라, 45밀리 호스, 컷팅톱. 그가 눈을 뜨자마자, 옆자리의 구급대원 오지훈이 아주 작은 목소리로 한 마디를 더했다. “그리고, 네 멱살 잡을 수도 있는 네 감정.”
말은 가볍게 들렸지만, 내용은 무거웠다. 신유건은 ‘감정’을 장비 목록에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는 소방학교에서 수치·절차·기술을 배웠다. 두께 45밀리 호스의 압력 손실 곡선은 외웠다. 그러나 현장의 굴욕—‘당신 왜 이렇게 느리냐’, ‘남자가 이거 하나 못 들어?’—은 곡선이 아니라 즉각적인 선으로 다가와 가슴을 관통했다. 하영은 그 선명함이 곧 ‘소모’의 시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고통은 대체로 둔하지만, 수치심은 칼끝처럼 날카롭다. 칼끝에 손이 자주 닿으면, 사람은 둘 중 하나다. 감각을 죽이거나, 칼을 더 세운다.
항만 북동쪽 소금창고. 전기 패널에서 시작된 화재가 내부 자재를 타고 지붕으로 번진 상황. 바닷바람은 낮게 분다. 바람은 불을 키우기도, 꺼뜨리기도 한다. 지휘차 안에서 무전이 왔다 갔다 하는 동안, 하영은 소박한 사실 하나를 적었다. “여기선 가장 센 바람이 내부에서 분다.”
현장에는 두 가지 바람이 있었다. 하나는 실제의 공기. 다른 하나는 조직의 공기. ‘남자는 버텨야 한다’는 문장과 ‘실패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문장이, 소금 알갱이처럼 바닥을 덮고 있었다. 미끄러웠다. 넘어지는 이유가 ‘젖어 있음’이 아니라 ‘소금’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자신을 탓했다.
유입부 차단, 선행진입, 상부 개구. 절차대로 움직이는 동안 신유건이 순간 미끄러졌다. 그의 오른손이 호스를 놓치자, 뒤쪽에서 짧은 욕설이 튀어나왔다. “빨리 잡아! 남자가—” 그 다음 말은 마스크 안에서 갇혀 사라졌다. 오지훈이 뒤에서 호스를 복원했다. 최상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손가락으로 ‘호흡’ 표시를 했다. 들어마시고, 멈추고, 내쉬기. 신유건의 호흡이 길을 찾자, 불길도 길을 내주었다.
진압 후, 지붕 위에서 내려오던 그에게 한 과장이 툭 던졌다. “우리 데스크에 사진찍는 팀에서 연락 왔다. 이번 홍보는 서령이가 전면에 설 거야. 다들 얼굴은 장갑처럼 가리고. 깔끔하게 움직이자고.”
강서령—소방서의 몇 안 되는 여성대원, 현장에서도 유능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표정 근육을 조였다. 그녀가 전면에 서면, 일은 조금 편해진다. 의전은 부드러워지고, 청중의 미소는 빠르게 열린다. 그러나 그날 저녁 휴게실에서 남자 대원들이 서로에게 던진 농담에는 자조가 섞여 있었다. “여긴 매력도 실적이고, 우리 남성성은… 뭐, 계량 불가지.” 웃음과 함께 기류가 살짝 기울었다. 거기서 미끄러지는 사람도 있었고, 두 발로 버티는 사람도 있었다.
하영은 그 대화를 기록하려다 펜을 잠시 멈췄다. ‘매력자본’이라는 단어는 각진 의미를 갖고 있었다. 현장에서 사람을 구하는 능력이든, 브리핑 때 주목도를 높이는 재능이든, 조직은 ‘보이는 효율’에 끌린다. 그리고 ‘남성성’은 이곳에선 두 겹으로 소비된다. 하나는 현장에서 몸을 던지는 체력으로, 다른 하나는 감정 노동의 완충재로. 더 오래, 더 세게, 더 말없이.
그날 밤, 하영은 한 장의 종이를 복사했다. 제목은 “정서관찰지—현장용.” 노트의 형식은 간단했다.
- **상황**: (언제, 어디서, 누구와)
- **신호**: (몸—심장, 호흡, 어깨 / 생각—자동문장 / 충동—하고 싶어진 행동)
- **행동**: (내가 실제로 한 것)
- **결과**: (즉시, 몇 시간 후)
- **의미**: (내가 지키고 싶은 가치와의 거리)
- **다음**: (같은 상황이 오면, 나는 무엇부터 할 것인가)
그녀는 남자 대원 7명, 여자 대원 2명에게 나눠 주었다. “보고서 아닙니다. 상관에게 제출도 안 합니다. 스스로에게 쓰는 작업입니다. 익명 제출을 원하면 봉투에 넣어도 좋고, 본인이 갖고 있어도 됩니다. 단, 한 가지. **거짓 없이, 짧게, 자주.**”
오지훈이 먼저 물었다.
“감정까지 기록해야 합니까?”
“감정은 상황의 원인이 아니라 신호일 때가 많아요. 신호를 기록해 두면, 다음 번에 덜 놀랍니다.”
신유건은 첫 칸에 적었다.
- **상황**: 소금창고 진압, 호스 놓침.
- **신호**: 심장 빠르게, ‘남자답지 못하다’는 생각, 호스를 버리고 도망치고 싶다는 충동.
- **행동**: 호흡 조절, 다시 잡음.
- **결과**: 이후 농담 들음. 유머로 받으려 했지만 밤에 잠 설침.
- **의미**: ‘도망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 **다음**: 넘어졌을 때 바로 손을 들어 ‘잠깐’ 표시. 내 호흡부터 잡기.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적은 것은 확신이 아니라 연습이었다. 감정은 지시문이 아니고, 충동은 사실 보고서에 더 가깝다. “보고 받았으니, 이제 결재 라인을 바꿉시다. 감정의 상사는 생각이고, 생각의 상사는 가치입니다.” 그녀가 덧붙였다.
문제는 주말 회식에서 터졌다. 방화복을 벗은 사람들이 사람으로 돌아오는 시간, 흔한 농담이 경계선을 넘었다. ‘그녀의 사진’, ‘그의 허벅지’. 대화는 처음엔 낄낄거리며, 이내 누군가의 손목에서 진짜로 미끄러졌다. 정확히 누구였는지는 오래 걸려도 밝혀진다. 그러나 그 시간, 그 순간, ‘집단’이 개별을 감쌌다. “장난이었어.” “오해할 만했네.” “여자가 너무 예민해.”
강서령은 웃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부 신고가 접수됐다. 조직은 흔히 이때 두 길을 동시에 택한다. 규정의 절차와, 정서의 자율. 전자는 변명과 증거를 만난다. 후자는 침묵과 압력을 만난다. 하영은 규정의 절차를 존중하면서, 정서의 자율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보았다. ‘누군가의 성욕’이 ‘다른 누군가의 안전’을 위협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권력이다. 욕망은 관리 대상이지만, 권력은 견제 대상이다.
그녀는 세 문장을 적어 벽에 붙였다.
1. **욕망은 자연, 행위는 선택.**
2. **장난은 하는 사람이 아니라, 당하는 사람이 정한다.**
3. **경계는 말로도, 몸으로도 표시해야 한다.**
그리고 세 가지 훈련을 붙였다.
- **충동-간극 훈련**: ‘하고 싶다’가 떠오른 순간, 90초간 다른 근육을 사용한다. 손을 주머니 속에서 꽉 쥐고 펴기, 발바닥을 느끼며 30초 서 있기, 물 3모금 천천히 마시기. 충동이 파도라면, 90초는 부표다.
- **경계 문장 연습**: “그 말 불편합니다.” “멈춰 주십시오.” “지금 이거 기록하겠습니다.” 서툴어도 좋다. 목소리가 흔들려도 효력이 있다.
- **책임-복구 프로토콜**: 선을 넘은 사람이 따라야 할 4단계. 즉시 인정(변명 금지) → 피해자 중심의 복구(당사자 동의하의 사과, 업무 재배치 포함) → 교육 이수(욕구-행위 사슬 훈련) → 관찰기간(피어 모니터링).
이 절차는 ‘벌’을 대체하지 않는다. 다만 조직 문화의 평형을 회복하기 위한 ‘공학’이다. 불을 끄는 것도, 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결국 냉정한 공학이 필요하다. 감정은 연료가 되되, 설계도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루는, 진압 후 샤워장에서 얼핏 본 장면이 하영의 메모를 길게 만들었다. 긴장된 현장은 끝났는데, 어깨는 더 올라가 있었다. 그 어깨를 내릴 누군가가 필요했다. 장비 정리 중 최상도가 말없이 모든 호스를 자신이 감았다. 후배들이 뒤늦게 달려와 말렸다. “선배, 저희가 하죠.” 그는 웃었다. “아냐. 내가 더 빨라.”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빠름은 누구에게 이득이고, 누구에게 상처였을까.
이곳의 남성성은 작업속도·장비지식·체력으로 계량된다. ‘빨라야 한다’는 신념은 불 앞에서는 미덕이지만, 사람 앞에서는 때로 폭력이다. 당신이 모든 것을 다하면, 옆 사람에게 ‘무력감’을 남긴다. 무력감은 부끄러움으로 번지고, 부끄러움은 과잉 보상으로 폭주한다. 과잉 보상은 자랑과 공격 사이를 오간다. 그리고 그 자랑은 종종 자신을 덫에 걸리게 한다. 더 빨라야 하고, 더 많이 맡아야 하고, 더 이상 어려움을 내색하지 못한다.
하영은 조용한 시간에 최상도를 불렀다.
“선배, 선배의 속도는 현장을 살립니다. 동시에, 누군가의 연습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천천히 하란 겁니까?”
“선배가 느린 게 아닙니다. 선배가 시간을 ‘내는’ 겁니다. ‘내가 하는 속도’와 ‘누군가가 배울 속도’ 사이의 균형을 계산해 주십시오. 그것도 선배만이 할 수 있는 기술입니다.”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장비실 천장의 조명이 호스 금속 연결부를 반사했다. 끝내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게. 다음번엔 애를 붙일게.” 이 작은 합의 하나가, 뒤에 이어질 몇 건의 사고를 사전에 끊었다. 어떤 조직은 위기에서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일상의 과한 효율에서 균열이 간다. 하영은 그 균열을 메우는 기술을 ‘속도 조율’이라고 이름 붙였다.
신고 건 처리 후, 구급대 숙소에 불이 꺼질 시간이면 무전자체가 심장 박동처럼 느껴진다. 이때 가장 흔하게 들어오는 건 ‘아무 일도 없음’이었다. 하지만 정작 대원들 머릿속에서는 다른 불이 타고 있었다. 밤의 각성, 낮의 무력, 반복되는 이미지. 몇몇은 수면제나 에너지 음료로 균형을 맞추려 했고, 더러는 포르노로 뇌의 보상계를 지렛대처럼 움직였다. 빠르게, 즉시, 강하게. 진짜 현장에서의 통제 불능을 가짜 화면에서의 전능으로 보상하려는 습관은 드물지 않았다.
문제는 강도가 아니라 방향이었다. 보상계는 초콜릿이든 찬사든, 욕망이든 인정이든, 빠른 신호에 예민해진다. 빠르고 강한 자극을 반복해서 받으면, 둔하고 깊은 기쁨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이른바 내성이다. 그리고 내성은 보상-후회-다짐-재발의 고리로 사람을 데리고 간다. 하영은 그 고리를 끊는 실험을 제안했다. 이름하여 ‘14일 자극 절식’.
규칙은 세 가지였다.
1. 퇴근 후 **디지털 자극 금식**: 포르노·도박·무한스크롤 중 하나라도 본인이 취약하다고 느끼는 것을 14일간 끊는다.
2. **대체 보상 배치**: 같은 시간에 땀을 내는 활동(10분 계단 오르기, 로프 당기기)과 ‘느린 기쁨’(도마질, 악기, 종이책)을 매일 20분 이상 배치.
3. **정서관찰지 병행**: 금식 1·3·7·14일 차 밤에 신호-충동-행동-결과를 기록.
“금식이 해답은 아닙니다.” 하영은 분명히 했다. “하지만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을 되찾기 위한 연습입니다. 욕망은 죄가 아니고, 통제 실패는 변명이 아닙니다. 우리는 ‘선택’을 연습합니다.”
이 실험은 몇몇에게 특히 고통스러웠다. 고통은 보통, 중독의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는 척도였다. 어떤 대원은 5일째 되는 날 빈정거렸다. “이건 수도원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현장입니다. 자기 장비를 관리 못하는 사람은 동료 장비도 망가뜨립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하영은 이 조직의 문제를 추상적 단어들로만 묘사하지 않으려 했다. 개념은 장비처럼 손에 잡혀야 쓸모가 있었다. 그녀는 장비함에 붙일 수준의 간단한 표를 만들었다. ‘일·사람·자기’—세 개의 과제. 어느 날은 일(화재·구급)이 압도하고, 어느 날은 사람(상사·부하·가족)이 과제를 어렵게 만든다. 대부분의 날에는 ‘자기’가 가장 큰 난제였다. 자기 비난과 자기 과시, 자기 포기와 자기 방어.
세 과제를 동시에 풀려 하면, 사람은 무능해진다. 하영은 한 번에 하나씩 묶어서 풀라고 했다. “오늘은 일의 과제만, 내일은 사람의 과제만.” 그리고 과제 간의 경계를 흐리지 않는 연습을 시켰다. “가정에서 들은 모욕을 출동 현장에 가져오지 말 것. 현장의 영웅담을 집 거실에 깔아놓지 말 것.” 경계는 잘못 궈지면 타버린다. 잘 그으면 그 선 자체가 안전선이 된다.
서해시 누리집에는 “서해소방서의 별, 강서령”이라는 제목의 영상이 올라왔다. 영상 속 그녀는 균형 감각이 좋았고, 명료하게 말했고, 내레이션의 템포를 정확히 읽었다. 조회수는 빠르게 올랐다. 댓글에는 칭찬과 시기와 노골이 뒤섞였다. 같은 날, 축대 아래 마른풀을 태우려던 노인이 전신 화상을 입었다. 출동 사진에는 남자 대원들이 거친 표정으로 들것을 들고 있었다. 같은 조직, 다른 화면.
하영은 이 간극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보이는 것’과 ‘지탱하는 것’의 배열을 바꾸려 했다. 주 1회 브리핑에서 ‘잘한 일’ 발표의 규칙을 수정했다. 전에는 화려한 진압, 드라마틱한 구조가 주제였다면, 이제는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가르쳤는가”, “누가 자신의 속도를 낮춰 누군가의 속도를 올렸는가”, “누가 자기 감정을 책임졌는가” 같은 항목이 추가됐다. 박수를 받는 대상이 바뀌자, 남자 대원들의 어깨가 조금씩 내려갔다. 내려간 어깨는 더 멀리 본다.
이 조직에서 시간이 쌓일수록, 하영의 ‘이중 생’이 무게를 더했다. 남자들의 농담 속으로 들어가고, 샤워장의 소음을 지워야 했고, 현장에서 여성이 받는 오해와 남성이 받는 압박을 동시에 이해해야 했다. 그녀는 이 ‘문지방’에 오래 서 있었다. 어느 쪽도 완전히 속하지 않으면서, 양쪽의 고통을 ‘내 일’로 수집했다. 남장을 유지하는 비용은 기대 이상이었다. 혼자 있는 밤에 오는 공허와 죄책감, 그리고 실체 없는 ‘배신감’의 그림자.
그럼에도 그녀는 버텼다. 이유는 간단했다. 들어가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외부에서 안전하게 말할 수 있는 진실만으로는, 내부의 위험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언어는 진입이 되지만, 체온은 변화를 만든다. 차가운 기관이 아니라, 뜨거운 몸이 움직이는 곳이니 더욱.
그녀는 결심했다. 불 앞의 남자와 불 속의 규칙에 대한 기록으로 삼고, 감옥의 남자들과 교차하기로. 바다의 바람이 감옥 벽을 지나가진 못하지만, 둘 사이에 흐르는 공기는 비슷했다. 평가와 수치의 조합, 욕망과 권력의 착종, 속도를 강요하는 성공과 느림을 부끄러워하는 문화. 그녀가 가져갈 도구는 하나로 충분했다. 정서관찰지. 그리고 그 위에 덧붙일 몇 가지 **실천 문장**.
그녀는 매일 아침, 상황실 화이트보드 한쪽에 짧은 문장을 썼다. 이 문장들은 어떤 유명인의 말을 인용하지 않았지만, 여러 심리학파에서 뽑아낸 검증된 요약이었다. 대원들은 그것을 ‘오늘의 조언’이라 불렀다.
- **몸부터 정렬**: 어깨를 내리고, 발바닥에 체중을 싣고, 턱을 약간 당긴다. 몸의 자세가 마음의 언어를 바꾼다.
- **방 하나 치우기**: 오늘은 사무실 서랍 하나, 장비함 한 칸. 작은 질서가 큰 혼돈을 버틴다.
- **관계는 ‘공동 프로젝트’**: 상대를 바꾸려 하지 말고, 같이 바꾸기로 합의한 ‘작업’을 1개 정한다.
- **욕구-행동 사슬 끊기**: ‘보고 싶다/하고 싶다’가 떠오르면, **기록→호흡→대체행동**의 순서를 자동화한다.
- **자기 비난 대신 자기 보고**: “나는 형편없다” 대신 “나는 오늘 03:40에 호스를 놓쳤다.” 구체는 잔인하지만, 변화 가능하다.
- **영웅 서사 교체**: ‘내가 다 했다’ 대신 ‘우리가 서로 시간을 냈다.’ 속도를 나눈 사람이 진짜 빠른 사람이다.
- **분노는 2차 감정**: 그 아래 깔린 두려움, 수치, 애도를 90초만 확인한다. 그 90초가 이후의 9시간을 바꾼다.
한 달 뒤, 같은 소금창고에서 작은 화재가 또 났다. 이번에는 내부에서 스스로 꺼질 수 있는 수준이었고, 출동은 빠르게 끝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유건이 말했다. “오늘, 선배가 일부러 저한테 호스를 맡겼습니다. 느리게요.” 최상도는 웃었다. “느리게가 아니라, 네 속도로.” 강서령은 덧붙였다. “그리고 내가 브리핑은 맡을게. 그 대신, 오늘 사진은 너희 둘이 찍어.”
하영은 창밖을 봤다. 바다는 낮은 파도로 흔들렸다. ‘소금은 여전히 바닥에 있고, 우리는 여전히 미끄러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위에 모래가 깔리기 시작했다. 이름 없는 실천, 짧은 문장, 작은 기록. 바람은 여전하고 불도 여전하지만, **소모**의 곡선은 완만해질 수 있다. 사람의 체온은 설계도를 바꿀 수 없다. 하지만 설계도를 사용할 사람의 마음을 바꿀 수는 있다.
그녀는 ‘변윤’이라는 명찰을 한 번 쓰다듬었다. 그리고 진짜 이름을 적어 넣을 날짜를 가늠했다. 그때까지 해야 할 일은 분명했다. **관찰지의 빈칸을 덜 비워두는 것.** 현장은 빈칸을 싫어한다. 빈칸은 오해로 채워지고, 오해는 폭력으로 번진다. 기록은 약이 아니라 장비다. 이 도시에서 오래 버티려면, 장비부터 챙겨야 한다.
밤이 다시 밝아졌다. 항만 조명이 해무에 번졌고, 경광등의 푸른 원이 다시 한 번 서해소방서 유리창을 스쳤다. 누군가의 허세는 조금씩 줄었고, 누군가의 호흡은 조금씩 길어졌다. 그리고 그녀는 알았다. 이 이야기는 불보다 사람이 뜨겁다는 증거가 될 거라고. 다음 장에서는, 불도 없고 바람도 없는 공간에서—감옥의 시간 속에서—비슷한 뜨거움을 마주하게 되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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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쇠창살 너머의 중독
서해시의 바람은 교도소 담장의 상단, 그 소름 돋는 주름 같은 철조망을 건너뛰어 들어온다. 바람은 거짓말을 못 한다. 바닷내, 철냄새, 오래된 플라스틱 의자의 탄내 비슷한 것까지 한꺼번에 들고 들어와 복도에 휘감기고, 형광등은 오늘도 아침을 바라보는 표정으로 깜박거린다. 전파음이 배경 음악처럼 깔린다. 감방 TV에서 나오는 축약된 웃음, 라디오의 교통정보, 확성기의 기상나팔, 누군가 침상 밑에서 구겨 꺼낸 비닐봉투의 바스락, 그리고 멀리 바깥 도시에서 한 박자 늦게 반사되어 날아오는 소방차 사이렌. 몸은 여기 있고 귀는 저기 있다. 이곳에 들어온 남자들의 시간은 쪼개져 있고, 쪼개진 조각마다 도파민의 유령이 붙어 다닌다. 약, 돈, 화면, 칭찬, 굴욕, 섹스, 도박, 통제감이든 무통제감이든, 세상이 그들에게 던졌던 빠르고 강한 불꽃의 잔광들.
변하영은 이곳에서는 변윤이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의료진도 아니고, 교정직도 아니다. 프로그램실 B-3 문패 옆에 붙은 임시 스티커, 정서안전 외부 고문. 차림은 말라붙은 분필가루를 쓸어낸 검은 작업복, 허리춤에는 아무것도 매달지 않았다. 이곳에서는 매다는 것보다 내려놓는 것이 안전했다. 그녀가 들어오자 교도관 윤계장은 팔짱을 끼고 웃은 얼굴을 만들었다. 외부인은 늘 반가워해야 한다. 외부인은 이 시스템의 인도적 성능을 비춰주는 거울이다. 거울은 깨지기 쉽다. 그래서 늘 플라스틱 테두리로 덧댄다. 절차 설명, 보안 서약, 휴대폰 반납, 신발 밑창을 한 번 더 살피는 눈빛. 벽시계의 초침이 지나가며 얇은 음을 남겼다. 오늘의 집단상담자 명단: 도박으로 집을 두 번 날린 남자, 필름처럼 끊기는 술기억의 빈칸을 핑계로 폭력을 행사하던 남자, 텔레비전에 나왔던 중고차 매매상, 부업이라며 선물거래에 손대다 빚이 빚을 낳았던 남자, 실업과 밤의 사이트를 같은 폴더에 넣고 살다가 끝내 폭주한 남자. 죄명은 다르고 패턴은 비슷했다. 무엇을 채우려 했는가보다, 어떻게 채웠는가가 결국 목에 칼처럼 왔다.
그녀는 접이식 책상 위에 종이를 한 장씩 놓았다. 크기는 작고, 행간은 넓고, 제목은 정서관찰지. 서해소방서에서 사용하던 그 판본과 거의 같다. 차이가 있다면, 맨 위 칸에 날짜 옆에 빈 칸이 하나 더 들어가 있다는 점이었다. 포획된 욕구. 적어도 여기에서는 욕구가 자유롭지 않다.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반대로 그 욕구를 형광펜으로 밑줄 긋는다. 감시의 빛이 클수록 그림자는 진해진다. 그녀는 말문을 열었다. 감정은 범죄가 아니고, 충동은 신호라고, 신호는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라고, 데이터는 당신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지 않고 오히려 항소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수십 개의 눈동자가 번쩍였다가 이내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무표정은 이 시스템의 복장 규정이었다.
프로그램실 공기에는 특유의 냄새가 앉아 있었다. 분필과 습기와 소독제가 섞이면 사람은 과거의 몇 장면을 떠올린다. 초등학교 복도, 지하 독서실, 세미나실, 그 어디서건 자리를 지키던 형광등이 있었고, 그 아래에서 약속이 남발되고 파기되고 연기되곤 했다. 변윤은 이 냄새가 안전벨트가 될 수도, 최면제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은 안전벨트 쪽으로 쓰기로 한다.
그녀는 입을 다물고, 대신 칠판에 네모를 그렸다. 한 칸 한 칸, 각진 칸들. 상황, 신호, 행동, 결과, 의미, 다음. 말의 시작은 늘 칸에서 시작됐다. 칸의 시작은 연필심에서 시작됐다. 연필심의 시작은 흑연의 층에서 시작됐다. 층들이 미끄러지며 남기는 흔적, 오늘의 중독은 그 미끄러짐의 달인이다. 좌판의 객체들처럼 빠르게 미끄러져 가며 핑거스냅으로 새로운 거래를, 새로운 판돈을, 새로운 영상을 불러온다. 남자들은 짧은 웃음을 흘렸다. 웃음의 길이가 제도의 긴장을 가늠하게 했다. 허용된 농담의 길이는 2.4초를 넘지 않았다. 그것을 넘기면 경비의 시선이 이동하고, 경비의 시선이 이동하면 방금 전까지 가능했던 말들이 불가능한 말이 된다.
첫 번째로 말을 고른 사람은 별명이 파동인 이였다. 그는 전자기기 수리점을 하다가 문 닫았다. 수리점은 낮에는 고물이 들어왔다가 밤에는 돈이 들어가던 곳이었다. 주파수로 설명하면 그는 늘 약간의 잡음과 함께 살았다. 뉴스의 헤드라인도, 아이의 카톡 알림도, 아내의 한숨도, 모두 같은 음량으로 들어왔다. 분리불능의 세계. 그래서 그는 더 강한 자극을 찾았다. 더 높고, 더 빠르고, 더 명료하게 이기는 것, 잃는 것도 명료하게 잃는 것. 하얀 칩과 빨간 칩, 승산과 망상, 손절과 손실의 픽셀들이 예상 가능한 파형으로 출렁이던 그 화면. 그는 오늘, 관찰지의 신호 칸에 이렇게 썼다. 손바닥의 땀, 후두부의 열, 언어가 소실되는 느낌, 손가락이 무언가를 스와이프하고 싶어지는 충동. 행동 칸에는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행동까지 가는 길은 금속 탐지기에 막혀 있었다. 그러나 충동은 금속이 아니다. 충동은 기체다. 기체는 틈만 있으면 들어온다. 그는 그녀를 보았다. 여느 상담사들처럼 동정의 모형을 들고 있지 않으리라는 기대 반, 실망 방지 장치 반.
변윤은 그의 종이 위 지워지지 않는 그 약간 떨리는 필압을 보며 말했다. 신호는 미리 오는 법이고, 충동은 바로 오는 법이고, 행동은 나중에도 바꿀 수 있는 법이라고. 나중에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기억은 편집되고, 의미는 다시 쓰이고, 결과는 제도와 시간을 통해 형을 줄이거나 늘린다. 다만 당신이 바로 오늘, 연필심으로 잡을 수 있는 것은 신호와 충동 사이다. 그 사이에 부표를 띄우자고. 그는 부표라는 단어를 마음에 넣었다. 바다가 바로 이 담장 너머에서 인기척을 하는 도시에서 부표는 가장 손쉬운 상징이었다. 하룻밤이면 어디선가 떠밀려 오고, 떠밀려온 것들은 관할 구역 밖이라고 말하기 쉽다. 그는 부표의 색깔을 떠올렸다. 노랑, 때로는 붉은. 그녀는 색깔을 묻지 않았고, 그는 말하지 않았다.
감방의 공용 텔레비전에서는 예능의 환호성이 끊겼다가, 광고가 나오고, 다짐을 유도하는 문장들이 공기를 슬쩍 고문했다. 석 달이면 영어, 30일이면 몸매, 14일이면 새 습관. 광고는 언제나 죄책감의 할인 쿠폰이다. 오늘 사면 내일의 부끄러움을 깎아 줍니다. 변윤은 광고의 문법을 빌려 썼다. 14일, 그 숫자는 감각을 재교정하기에 나쁘지 않다. 이전 직장에서, 그리고 이곳으로 오기 전 도시의 다른 기관에서, 그녀는 14라는 숫자를 부표로 써왔다. 빠른 자극을 끊고 느린 기쁨을 깔아 두자고. 여기에선 느린 기쁨이 실은 가장 빠른 탈출 경로일 수 있다고.
이야기를 듣던 남자 중 하나, 술로 모든 것을 설명해 온 체질의 박문태가 말했다. 끊으라고요? 여기서요? 끊을 건 많지 않은데요. 그는 웃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공회전의 냄새가 났다. 음주가 그의 범죄에 붙어다니는 형용사라면, 그의 진짜 중독은 망각이었다. 고통을 지우는 데 너무 익숙해진 사람이 오히려 고통만 남기는 경우가 있다. 그는 망각의 전문가였고, 망각은 여기서도 작동한다. 모욕을 잊고, 약속을 잊고, 어제의 울음을 잊고, 새벽의 결심을 잊는다. 그녀는 끊으라는 말 대신, 간격이라는 말을 꺼냈다. 끊는 것보다 간격을 늘리는 것이 덜 도발적이었다. 술을 마시고 싶었던 순간과 마시게 된 순간 사이를 늘려 보자. 늘리는 데 필요한 도구는 이것이다. 당신의 몸에 있는 느린 근육을 하나 고르고, 그 근육에 90초를 맡길 것. 손을 꽉 쥐었다 펴기, 발뒤꿈치로 서서 10까지 세기,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쉬면서 복부의 움직임을 세 번 정확하게 느끼기. 해본다고 달라지지 않는다면, 해본 적이 없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끄덕임은 반항보다 훨씬 다양한 의미를 숨길 수 있다.
프로그램실 B-3의 반대편, 감방 D동 복도에서는 누군가 독서실 책상만 한 사이즈의 테이블에서 샤프심을 헐었다. 정밀한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도박을 싫어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둘은 같은 전류에 물려 있다. 도박은 우연을 가장한 계산이고, 정밀 노동은 계산을 가장한 의식이다. 둘 다 통제감의 의식을 제공한다. 통제감은 거래 가능한 화폐다. 이 통제감의 회수율이 떨어지면 사람은 화면을 켜거나, 창문을 연다. 창문 너머 바다는 실제로 보이지 않지만, 바람은 진짜로 들어온다. 바람은 거짓말을 못 한다.
윤계장은 벽에 기댄 채, 수간호사에게서 배운 듯한 표정으로 전체를 훑었다. 이 남자도 중독이 있었다. 권력이라는 이름의 니코틴 패치. 한 번 붙이면 가려움이 사라지고, 벗기면 피부가 허전하고, 다시 붙이면 자극이 줄었다 늘었다 한다. 그는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동안 두 번쯤 시계를 봤다. 시간도 중독이 된다. 언제 끝나나, 언제 나가나, 언제 자나, 언제 먹나. 사람은 시간을 마약처럼 쪼개 먹고, 시간이 사라지면 금단을 겪는다. 변윤은 그가 시간을 보는 빈도에 맞춰 말의 길이를 조절했다. 이건 전술이자 예의였다.
정서관찰지의 칸들은 점점 채워졌다. 어떤 이는 신호 칸에 허벅지의 가려움과 침 삼키는 횟수를 적었고, 어떤 이는 의미 칸에 중학생 딸의 이름을 적었다. 이름을 적는 순간, 의미는 구체가 된다. 구체는 잔인하지만, 움직인다. 상징은 위로가 빠르지만, 오래 못 간다. 이 방에서 유일하게 빠르고 오래가는 것은 냄새뿐이다. 오늘은 소독약, 내일은 보리차, 모레는 페인트, 그다음은 땀. 그녀는 아이의 이름을 적은 그 남자에게 말했다. 이름을 의미 칸에 자주 적는 대신, 다음 칸에 넣어 보자고. 다음. 다음은 움직임의 이름이다. 그가 적은 다음은 이랬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나오면 바로 끈다. 대신 사각형 운동장 세 바퀴를 천천히 돈다. 바퀴마다 하나씩, 아이의 생일, 입학식, 첫 병원. 그리고 마지막 바퀴에서는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이름은 멀미를 부른다. 그는 낯선 안도의 표정을 지었다. 눈물이 아니라, 고개 각도의 변화가 먼저였다.
어두워지는 시간, 수감자의 몸은 민감해진다. 저녁 배식 후, 분리수거 후, 세면 후, 취침 점호 전. 외부 세계의 절정 시간이 이 세계에는 공백으로 느껴지는 시간. 광고는 더 신나고, 도시의 축구장은 불이 켜지고, 친구들의 단톡방은 빠르게 움직이고, 주식시장 해외판은 막 문을 열기 시작한다. 이 시스템은 그런 시간에 잠을 강요한다. 강요가 싫은 몸은 반동을 찾는다. 반동은 늘 같다. 말, 환상, 이미지, 기억, 손의 습관. 변윤은 그 시간대를 위해 작은 카드들을 준비했다. 장비 카드. 소방서에서처럼 여기서도 장비는 구체가 되어야 한다. 카드에는 이따위가 적혀 있다. 혀끝에 올리는 얼음 조각 하나, 찬물로 손등 씻기, 스쿼트 15회, 바닥의 점 하나를 60초간 바라보기, 지금 여기 있는 다섯 가지 소리 적기. 어떤 기결도, 어떤 신학도, 어떤 정치도, 이런 카드 몇 장 앞에서 무력해진다. 대신 이런 카드들이 한 사람을 그날 밤의 폭주로부터 구한 사례는 셀 수 없다. 숫자는 기록하지 않는다. 기록되는 순간, 이 시스템은 숫자를 수상쩍게 만든다. 그는 좋아진 척을 해야 하고, 기관은 성과를 말해야 하고, 누군가는 회의에서 박수를 받아야 한다. 박수는 피드백을 대신하는 듯하지만, 몸의 조건을 바꾸진 않는다.
재소자들 사이에 떠도는 음성 팬데믹 같은 이야기가 있다. 어떤 교도관은 커피에 각성제를 타 먹고, 어떤 수감자는 칫솔로 벽시계를 만들었고, 어떤 방은 밤마다 발자국 소리가 난다고. 이야기들은 체온을 가지고 이동한다. 이야기가 이동하는 간격과 욕구가 치솟는 간격은 기묘하게 겹친다. 변윤은 이 간격에 쐐기를 박고 싶었다. 그래서 관찰지를 단체용으로도 썼다. 집단 관찰지. 오늘의 방 분위기, 오늘의 복도 소리, 오늘의 냄새, 오늘의 유혹. 방장은 취침 전에 네 칸만 적는다. 유혹칸에는 실제 물건 대신 유혹의 그림자를 적는다. 화면, 기억, 빈자리, 자책. 다음 칸에는 방 전체가 할 수 있는 대체 행동을 적는다. 조용한 시간에 누군가는 편지를 읽고, 누군가는 문장 하나를 외우고, 누군가는 이불을 네 번 접고 다시 편다. 어리석어 보이는 동작들이 뇌의 균형추를 되찾는다. 느린 기쁨은 젖먹이와 노인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중독의 몸에는 느린 기쁨이 처음이자 마지막 길이다. 그것은 재소자에게만이 아니라, 교도관에게도, 그녀에게도 해당된다.
밤이 깊어질수록, 장치들은 더 선명해진다. 쇠창살의 줄눈, 시멘트의 모래 비율, 난방 파이프의 뜨거운 숨. 누군가는 이 세계가 거대한 실험실이라고 믿는다. 친절한 표정의 프로그램, 꼼꼼한 점호, 동선의 반복. 변윤은 실험실을 실험실로 만드는 장치를 꺼렸지만, 실험실의 도구는 잘 썼다. 코끼리와 기수의 은유를 꺼내면서도, 코끼리의 몸피를 실제로 다루는 절차를 소개했다. 기수가 아무리 야무져도 코끼리는 흥분하면 기수를 떨어뜨린다. 그래서 기수가 먼저 앉아야 한다. 엉덩이, 발, 손, 눈, 순서대로. 자리에 앉고, 발바닥을 바닥과 협상시키고, 손을 무릎 위 두고, 눈을 한 점에 붙인다. 이 단순한 의식이 반복되면, 코끼리는 움직일 수 있지만 움직이지 않기로 한다. 움직이지 않는 힘. 수감자들은 그 문장을 마음속에서 한 번 더 읽었다. 움직이지 않는 힘. 이 힘은 철문을 여는 힘은 아니다. 하지만 철문이 열렸을 때 도망치지 않게 하는 힘이다. 도망은 재범을 낳고, 재범은 신문에 이름을 올리고, 이름은 다시 욕구를 조롱하고, 조롱은 다시 화면으로 들어간다. 스스로 자신을 끊어내지 못하면, 시스템은 당신을 반복한다.
어느 날, 방송실에서 흘러나온 뉴스에 도시의 불빛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항만의 야간 작업량이 늘어 경광등이 더 자주 보이게 되었다고. 한 남자가 말했다. 그 소리가 들릴 때면 이상하게도 가슴이 편해진다고. 밖이 불타는 동안 여긴 안전하다는 환상, 바깥의 구조대가 움직이는 동안 여기서는 제자리에 있으라는 명령이 몸을 쉬게 한다고. 변윤은 그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 소리가 지금 여기의 소방서, 그녀가 다니는 전장의 소리라는 사실을. 대신 마음속에서 문장이 겹쳤다. 남자들의 세계는 불, 물, 금속, 시간으로 이루어져 있고, 어쩌면 남자 자신이 그 연료였다. 연료는 타서 사라지는 숙명을 갖는다. 그러나 장작과 다르게 인간은 가끔 타지 않고 남을 수 있다. 타지 않고 남는 법은 느리게 타는 법과 같지 않다. 아예 타지 않도록 설계도를 바꾸는 일, 설계도를 바꾸지 못한다면 연료의 배열을 바꾸는 일, 배열을 바꾸지 못한다면 성냥을 멀리 두는 일. 그는 끄덕였다. 그녀가 입을 열지도 않았는데.
한 달이 지났을 때, 프로그램실 벽의 종잇장들은 모서리가 말렸다. 종이들은 습도를 먹고, 약속들을 먹고, 찡그림을 먹는다. 종이의 모서리가 말리면 사람의 어깨가 조금 내려간다. 의자에 앉아 있던 파동이가 빙긋 웃었다. 그는 여전히 자주 꿈을 꾸었고, 꿈속에서 숫자들이 구르고, 구르는 숫자는 자석처럼 그의 뇌를 끌어당겼다. 하지만 아침에 깨면 그는 관찰지의 행동 칸에 걷기를 적었다. 걷기는 도박과 싸우지 않는다. 걷기는 도박을 외롭게 만든다. 도박이 외로워지면, 그것은 저절로 고개를 숙인다. 박문태는 술의 자리를 설거지로 바꿨다. 설거지는 부끄럽지 않은 습관이고, 습관은 부끄러움을 더디게 만든다. 부끄러움이 더디면 폭력도 더디다. 더디다는 말이 이곳에서 얼마나 큰 사고 예방인지 밖의 사람들은 모른다. 그녀는 알았다. 더디게, 천천히, 오래. 형광등조차 이를 알았다. 형광등은 깜박거리다 말고 포기한 듯 안정되었다. 안정은 기계의 최고의 성품이다.
어느 저녁, 윤계장이 문을 닫으며 툭 던졌다. 변 선생, 이 사람들 다 나가면 다시 돌아옵니다. 아시죠? 발음에 오래된 피곤이 묻어 있었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확률은 냉정하고, 몸은 습관으로 돌아가며, 도시의 밤은 새로운 유혹을 낸다. 그러나 그녀는 숫자의 속도를 믿지 않고, 한 사람의 느린 속도를 믿었다. 돌아오는 이도 있고, 돌아오지 않는 이도 있다. 돌아온 이도 다시 한번 덜 망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 덜 망가지게 만드는 장치는 칸과 카드, 부표와 간격, 몸과 호흡, 이름과 다음. 이 단어들은 저작권이 없고, 포상금도 없고, 장관 표창도 없다. 그래도 시스템을 조금씩 삐걱거리게 만든다. 삐걱거림은 개조의 신호다.
그녀가 퇴실할 때, 해풍이 철문 틈으로 들어왔다. 바람은 거짓말을 못 한다. 교도소의 마당에 잠깐 내려앉은 빛은 먼 바다에서 반사되어 온 것이고, 그 바다 위에는 어젯밤에도 소방차의 푸른 원이 떠돌았을 것이다. 한 도시, 두 장소, 동일한 소모. 한쪽은 불을 끄며 타 들어가고, 한쪽은 불을 못 켜서 타들어간다. 남자의 몸은 어느 편에서든 희생양이 되기 쉽다. 그녀는 희생양을 설계의 결함으로 보았다. 결함을 보수하는 첫 작업은 보고서가 아니라 관찰지다. 누구든 오늘의 신호를 구체적으로 적는 순간, 내일의 충동은 조금 늦게 도착한다. 늦게 도착한 충동은 손에 잡힌다. 손에 잡히는 충동은 놓아줄 수 있다. 이 간단하고도 원시적인 순서가 이 무거운 제도보다 먼저였다. 제도는 종종 인간을 삼키지만, 관찰지는 인간을 되돌린다.
문밖, 해무 속에서 서해시의 운송트럭이 저속으로 움직였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접힌 종이를 하나 꺼냈다. 그 종이엔 오늘 아침 소방서 화이트보드에 썼던 문장이 그대로 적혀 있었다. 몸부터 정렬, 방 하나 치우기, 경계 문장 연습, 욕구-행동 사슬 끊기, 자기 보고, 영웅 서사 교체, 분노 밑의 90초. 여기서는 용어가 조금 바뀐다. 방 하나 치우기는 침상 밑 상자, 경계 문장은 농담 대신 기침, 자기 보고는 죄책감 대신 날짜와 시간. 문장들은 도시와 감옥 사이를 다리처럼 연결해 준다. 다리는 물 위에 놓이지만, 물이 다리를 설명하지는 않는다. 다리는 걸어야 다리다. 그녀는 걸었다. 내일은 다시 B-3, 모레는 다시 소금창고 근처의 항만. 남자들은 그 사이 어디엔가 놓여 있다. 놓여 있으면서도 붙잡혀 있고, 붙잡혀 있으면서도 탈출을 꿈꾼다. 탈출은 제도에서가 아니라 습관에서 먼저 일어난다. 그 사실을 알면, 이 쇠창살도 잠시 수학의 기호가 된다. 집합의 경계, 교집합의 선. 그 선 위에서, 그녀는 느리게, 아주 느리게 펜을 움직인다.
![[u3732612478_A_warm_professional_Korean_female_psychologist_co_aa28f789-9623-455b-a983-ec85e0121c4e_3.png]]
## 3. 불길 앞의 고립
서해소방서 A팀은 새벽 네 시 이십삼 분에 호출을 받았다. 항만 쪽 냉동창고의 내부 화재. 출동기록에 찍힌 좌표는 과거에도 여러 번 호출의 이유가 되었던 장소였다. 큰 냉동고는 외부에서 보면 쉬운 건물처럼 보이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복잡한 미로 구조와 높은 선반, 연기의 흐름을 방해하는 칸막이가 결합된 난이도 높은 현장이었다. 팀장 안기범은 차고 문이 열리자마자 루틴대로 구두 브리핑을 했다. 접근로, 수원, 환기, 내부 열원의 예상 위치, 퇴로 표시. 그의 말은 점검 목록 같았지만, 실제로는 팀의 심장을 한 박자 낮추는 역할을 했다. 긴급 상황에서 가장 먼저 소실되는 것은 언어이고, 언어가 소실되면 판단의 질이 급격히 내려간다. 안기범의 브리핑은 이를 미리 붙잡아 두기 위한 일종의 안전핀이다.
첫 진입은 정세욱과 김락준이 맡았다. 정세욱은 서른넷, 투입과 철수의 타이밍 감각이 좋은 소방사였다. 그는 호스를 어깨로 걸치며 늘 오른손의 감각을 확인하는 습관이 있었다. 무게감, 마찰, 물의 예비된 압력. 이런 사소한 점검이 그의 자신감을 떠받쳤다. 김락준은 그보다 열 살 많았다. 노즐의 각도와 방수 패턴을 선호대로 세팅한 뒤, 막연한 예감 같은 것을 짧게 말해두는 스타일이었다. 오늘은 바닥의 온도 분포가 이상하네, 위가 아니라 아래를 먼저 보자. 그 말은 나중에 의미를 가질 가능성이 있었다.
두 사람은 복도 끝에서 좌회전해 냉동고로 이어지는 슬라이딩 도어를 통과했다. 연기는 차갑지 않았다. 냉동창고의 연기는 가끔 속임수를 쓴다. 얼음과 금속이 많은 공간에서 열원이 보이지 않으면, 사람의 뇌는 위험을 과소평가하려 한다. 정세욱은 손으로 문틀의 상부를 짚었다. 열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랫동안 연습해 온 도식이 자동으로 재생됐다. 열은 항상 증언한다, 연기는 종종 거짓말한다. 라디오로 위치와 방향을 간략히 보고하고 전진했다.
열화상카메라가 잡아내는 잔열의 패턴은 비정상적이었다. 바닥 레벨에서 가장 뜨거워야 할 지점이 아닌 곳에서, 지그재그의 색 얼룩이 움직였다. 선반과 선반 사이 좁은 통로에서 물건이 쓰러져 있었다. 그 순간 작은 폭음이 있었고, 어느 칸막이 뒤에서 연기가 급격히 흘러나왔다. 정세욱의 시야가 한순간 흩어졌다. 그는 반사적으로 자세를 낮추고, 노즐을 팬 패턴으로 짧게 열었다 닫았다. 그때 김락준의 손이 어깨에서 떨어져 나갔다. 호스의 장력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누군가 넘어졌거나, 발을 빼고 후퇴했거나, 통신선이 걸렸거나. 라디오가 잡음만 남긴 채로 응답하지 않았다. 그 작은 단절이 고립의 시작이었다.
고립은 물리적이면서 심리적이다. 물리적으로는 선후방의 접촉이 사라지는 순간 시작되고, 심리적으로는 내가 혼자 모든 것을 판단해야 한다는 압력이 몸 전체로 번지는 순간 발생한다. 고립은 위험 그 자체가 아니라, 위험의 평가 방식을 왜곡한다. 정세욱은 이를 알고 있었다. 몇 달 전부터 서해소방서에는 출동 전후로 짧게 쓰는 정서관찰지가 도입되었고, 거기에는 개인별 고립 신호를 미리 적어두는 칸이 있었다. 그의 신호는 뚜렷했다. 청각이 먼저 사라지고, 시간감각이 길게 늘어나며, 호흡이 목 뒤쪽에서 막히는 느낌이 온다. 지금 그 순서가 진행 중이었다.
그의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전진을 강행하거나, 좌우의 통로를 확인해 우회하거나, 후퇴하면서 동료를 찾거나. 영웅적 선택일수록 몸은 당기고, 합리적 선택일수록 마음은 느려진다. 그는 노즐을 잠시 닫고, 장갑 낀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뜨거운 곳이 더 넓어지고 있었다. 불길의 이동 방향을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바닥과 공기의 냄새가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는 대신, 마스크 안에서 세고 있던 숫자를 잠시 멈추었다. 정서관찰지의 작은 문장을 그대로 따라 했다. 감각의 좌표를 재정렬하라. 발, 손, 어깨, 시야 순서대로.
몇 초 뒤 라디오가 살아났다. 김락준의 짧은 욕설과 함께, 우측 통로에서 돌아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선반 위에서 떨어진 상자가 그의 등을 쳤고, 그가 잠깐 균형을 잃은 것이었다. 두 사람은 눈을 맞추지 않았지만, 노즐 손잡이의 미세한 움직임으로 서로의 상태를 확인했다. 고립은 끝났고, 위험은 남았다. 그들은 다시 전진했다. 이후의 일은 기록처럼 진행됐다. 차단, 냉각, 환기, 잔불정리. 현장에 있던 누구도 그 순간 노즐맨 한 명의 고립이 얼마나 빠르게 확장될 수 있는지를 완전히 보진 못했다. 그러나 정세욱은 안다. 고립은 방화복 바깥에서가 아니라, 마스크 안에서 먼저 커진다는 것을.
서해소방서에 도입된 정서관찰지는 단순한 설문지가 아니었다. 변하영이 만든 이 서류는 일종의 훈련 도구였다. 출동 전 30초, 출동 후 3분, 교대 직전 5분. 이렇게 세 번, 매우 짧은 시간 동안 개인과 팀이 같은 도구를 보면서 서로 다른 데이터를 적는다. 출동 전에는 오늘의 경계와 취약 신호, 출동 후에는 고립의 순간과 대처의 실제, 교대 직전에는 내일의 준비 동작을 적게 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솔직함이 아니라 구체성이다. 솔직함은 좋은 미덕이지만, 구체성이 없으면 심리적 개입은 작동하지 않는다. 변하영은 항상 같은 말을 반복했다. 두려움은 죄가 아니다, 대책 없는 추정이 문제다. 감정은 사건이 아니고, 감정에 딸린 행동을 설계하지 않으면 사건을 불러온다.
그녀는 서해소방서에서 남성성의 과잉 표식을 굳이 말로 평가하지 않았다. 대신 반복되는 패턴을 눈앞에 놓아 보였다. 불길 앞에서의 고립은 현장 내부에서뿐 아니라 조직 내에서 더 자주 발생한다. 장비 앞에서의 침묵, 농담으로 감춘 수치심, 평가의 눈을 두려워한 과감한 돌진. 이런 것들은 수치와 훈장 사이에서 오가는 교환의 방식처럼 보였고, 실제로는 팀의 안전을 갉아먹는 작은 균열이었다. 그녀는 균열을 도덕의 언어로 비난하지 않고, 기능의 언어로 교정했다. 기능이 떨어지는 습관은 바로잡아야 한다. 자존심은 무엇으로도 보상되지 않는다. 방화복의 지퍼가 닫히지 않으면 지적하듯, 감정의 문이 덜 닫혔을 때도 지적해야 한다. 지적은 모멸이 아니라 연장 점검이다.
정서관찰지의 한 칸에는 고립 전조를 적는 공간이 있었다. 어떤 이는 손의 떨림, 어떤 이는 무전에서의 소음 과민, 어떤 이는 상대의 지시에 대한 과도한 반발. 변하영은 이 전조에 대응하는 대체 행동을 아주 작은 단위로 설계하게 했다. 90초 호흡을 강조하되, 추상적 숨 고르기가 아니라 현장 언어로 번역했다. 노즐을 잠시 닫고, 팔꿈치 두 번 들어 올리기, 무릎을 바닥에 정확히 대고, 시야를 바닥-좌-우-전 순으로 스캔하기. 여기에 구두 경계 문장을 하나씩 짝지었다. 내 시야가 좁아진다, 잠깐 멈춘다. 지금은 팬, 이따가 스트레이트. 후퇴 하나, 확인 둘. 이런 문장들은 안전과 자존심의 충돌을 최소화하는 절충안이었다. 누군가의 고립을 중단시키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큰 훈화가 아니라, 짧고 동등한 문장이다.
그녀는 현장을 따라다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나 가능한 범위의 훈련에는 직접 들어갔다. 어떤 날은 장비 착용 후 훈증훈련에서 함께 앉았고, 어떤 날은 방화복을 걸치고 연기 충만실에 들어갔다. 다들 알면서도 모른 척해 준 사실이 있다. 그녀가 남자의 투구를 쓰고 헐렁한 장화를 신을 때, 얼굴의 윤곽과 어깨선은 그 누구의 것과도 달랐다. 애써 숨긴 이유는 단 하나다. 실험의 순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그가 아니라 그녀로서 특정 반응을 끌어내면, 이 조직의 고립은 그냥 다른 이름의 분리로 정당화될 수 있었다. 대신 그녀는 장비를 매개로 한 동일성을 활용했다. 무게, 열, 시야, 소음. 이 네 가지가 한 사람을 고립으로 몰아가는 기본 축이라는 것을 몸으로 확인했고, 현장 교육에 그대로 반영했다. 네 가지 중 하나가 급증하면 나머지 셋을 낮추는 절차를 만들자. 열이 오르면 속도를 낮추고, 시야가 좁아지면 호흡을 넓히고, 소음이 커지면 언어를 줄인다. 이렇게 간단한 규칙이 실제로는 팀을 살려냈다.
그녀는 또 다른 종류의 고립을 다뤄야 했다. 현장 밖, 사무실과 휴게실에서 자라나는 고립이다. 말장난처럼 시작되는 성적 농담, 구조 성공 뒤의 과도한 자격감, 고된 근무의 피로를 이유로 타인의 경계를 테스트하는 습관. 한 소방관은 훈련장에서의 잡담 하나로 동료를 불편하게 만들었고, 그 사실이 팀의 지지 구조를 조금씩 약하게 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악의가 아니라 문맥의 결핍이었다. 그는 자신이 영웅으로 호명될 자격이 있다고 느끼는 순간, 일상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변하영은 그를 불러 따로 앉혔다. 비난보다 맥락을 먼저 세웠다. 고립은 사람을 성급하게 만든다. 고립은 사람을 자기 쪽으로만 당긴다. 우리는 지금 팀의 고립을 줄이는 중이고, 당신의 주말 농담은 팀의 고립을 키웠다. 그것이 왜 기능을 떨어뜨리는지 설명할 테니, 당신은 경계 문장을 하나 만들라고 했다. 그는 잠시 멈추겠습니다, 여기서 멈출게요, 라는 말을 택했다. 실전에선 고립을 끊기 위해 말문을 여는 것이 필요하다면, 일상에선 고립을 막기 위해 말문을 닫는 것이 필요했다. 그는 그 문장을 벽에 붙여두었다. 이후 몇 주 동안 그 문장이 실제로 몇 번 사용되었는지, 누구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을 사용하지 않아도 된 날들이 늘어났다는 점이었다.
정서관찰지는 개인이 쓰되, 팀이 읽는 방식을 취했다. 누구나 자기의 전조를 공유하되, 해석은 공동으로 했다. 누군가는 장난으로 만들 위험이 있었지만, 대부분은 오히려 안도했다. 고립이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시스템의 위험으로 언어화될 때, 사람들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역할을 조정한다. 팀장 안기범은 매 교대마다 관찰지에서 뽑힌 세 문장을 화이트보드 상단에 적었다. 오늘은 시야보다 발. 오늘은 속도보다 순서. 오늘은 큰 소리보다 짧은 말. 이런 문장들은 구호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행동의 사전 약속이었다.
며칠 뒤, 서해시의 오피스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호실 내 인테리어 자재가 불을 키웠고, 복도에 설치된 몇몇 불법 구조물이 퇴로를 좁혔다. 12층에서 아이 울음이 들린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엘리베이터는 이미 정지되었고, 계단실에 연기가 쌓였다. 정세욱은 팀과 함께 10층에서 임시 환기를 하고 12층으로 올라갔다. 상황은 긴박했고, 라디오는 명령어와 비명 사이를 빠르게 오갔다. 방화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멀리서 들렸다. 그때, 복도 끝에서 문 하나가 휙 닫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본능적으로 전진하려 했다. 그 순간, 정서관찰지의 한 구절이 그의 몸에 걸렸다. 영웅 충동은 팀을 고립시킨다. 멈춤-관찰-진행. 그는 발을 멈추고, 좌측 벽면을 짚으며 시야를 스캔했다. 바닥 쪽 연기의 흐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더 빨랐다. 바로 앞의 문이 아닌, 한 칸 건너의 세대가 더 뜨겁다는 뜻이었다. 5초 뒤, 그 문이 안에서 열리며 연기가 폭발했다. 노즐이 팬으로 열렸고, 팀이 붙었다. 그 짧은 멈춤이 팀을 살렸다.
화재는 진압되었고, 아이는 구출되었다. 현장 종료 후의 회의에서 안기범은 정세욱에게 말을 넘겼다. 그는 사고 지점에서의 고립과 멈춤에 대해 짧게 설명했다. 그의 설명은 과장되지 않았고, 변명처럼 들리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고립의 전조를 느꼈고, 그 전조를 멈추는 작은 절차를 실행했으며, 그 결과 팀이 고립되지 않았다는 사실만을 말했다. 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는 박수를 칠 수도 있었지만, 박수보다 더 나은 피드백은 반복 가능성이다. 변하영은 그 자리에서 새로운 문장을 화이트보드에 적었다. 고립을 인정하는 사람만이 연결을 설계한다. 그 문장은 이후 한동안 서해소방서의 출입문 옆에 붙어 있었다.
현장과 조직에서의 고립은 밤마다 다른 얼굴을 하고 나타났다. 현장에서는 터널 시야, 시간 왜곡, 청각 배제, 언어 상실의 순서로 진행되고, 조직에서는 농담으로 시작해 경계 미세침해, 역할 불명확, 책임 회피로 이어졌다. 두 고립은 서로를 강화했다. 현장에서의 고립이 잦은 사람은 조직에서 더 거칠게 행동했고, 조직에서의 고립이 깊은 사람은 현장에서 더 성급하게 판단했다. 변하영은 이 상호강화를 끊는 데 초점을 맞췄다. 방법은 화려하지 않았다. 작은 의례, 구체적 문장, 느린 복구. 그녀는 비유를 좋아하지 않았다. 대신 데이터와 체감 사이를 연결했다. 출동 기록의 숫자, 잠깐의 심박수, 무전 기록의 공백, 관찰지의 단어들. 이 모든 것을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사람들과 함께 봤다. 지적은 짧게, 설계는 길게.
서해시의 남자들이 소모된다는 사실을 그녀는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다뤘다. 불길 앞의 고립은 그 소모의 전조였다. 어떤 남자는 고립을 힘으로 돌파하려 했고, 어떤 남자는 고립을 농담으로 흩뜨리려 했다. 그녀는 힘을 방향으로 바꾸고, 농담을 문장으로 바꾸었다. 방향은 안전을 주고, 문장은 경계를 준다. 때로 그녀는 단호함을 사용했다. 세상을 구하기 전에 지가 방청소부터 하라는 말로, 현실로 주의를 환기시켰다. 사람은 외부의 혼돈과 싸우기 전에 내부의 질서를 잡아야 한다. 더 무서운 화재로 갈수록, 더 사소한 정돈이 필요하다. 장비의 위치, 구두 약속의 순서, 언어의 절약. 이 세 가지를 지키는 사람은 고립을 늦춘다. 고립이 늦어지면 판단이 살아 있고, 판단이 살아 있으면 구조가 가능하다.
그녀는 또한 팀의 고립을 줄이기 위한 작은 약속들을 만들었다. 각 팀은 고립 신호를 나타내는 안전어를 하나씩 정했다. 지나치게 영웅적인 돌진이 보일 때, 혹은 무전으로 말이 길어질 때, 그 단어를 던지면 모두가 알았다. 지금은 속도를 낮출 시간. 약속은 놀랍도록 잘 작동했다. 동등한 약속은 위계를 무너뜨리지 않고도 위계를 유연하게 만든다. 그리고 약속 옆에는 죄책감이 아니라 책임감이 자랐다. 책임감은 고립을 줄인다. 죄책감은 고립을 키운다. 죄책감에 빠진 사람은 침묵하고, 책임감이 있는 사람은 말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소방서는 이상할 정도로 고요해진다. 장비실의 냄새, 매트 위의 자국, 급하게 벗어놓은 장갑의 곡선. 그 고요 속에서 어떤 사람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어떤 사람은 돌아갈 집의 고립을 떠올린다. 불길 앞에서의 고립은 집 안 거실에서도 이어진다. 화면의 빠른 자극, 말의 부족, 칭찬과 자책의 불균형. 이 문제를 그녀는 현장의 도구로 다뤘다. 관찰지를 가정 버전으로 바꾸어 배포했다. 퇴근 후 첫 30분에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인지와, 그 대신 무엇을 할 것인지. 화면을 켜지 않기, 차 키를 한 번 더 쥐지 않기, 냉장고 문을 습관적으로 열지 않기. 대신 샤워 후 바닥에 무릎 닿이기, 식탁 위 한 점을 60초 바라보기, 오늘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장면을 한 문장으로 적기. 이 간단한 설계는 몇몇 가정의 긴장을 눈에 띄게 낮췄다. 집 안의 고립이 줄어들 때, 현장의 고립도 줄어든다. 사람은 연결에서 힘을 얻는다. 연결은 거창한 이해가 아니라 작은 반복으로 만들어진다.
몇 달 뒤, 서해소방서의 기록에는 현장 중 구두 경계 문장 사용이 늘었고, 급한 돌진 직후의 멈춤이 눈에 보이게 많아졌다. 문제와 사고가 사라진 건 아니다. 대신 고립이 빨라지지 않았다. 어느 겨울 새벽, 간이창고 화재에서 김락준이 노즐을 잠시 닫고 다시 연 순간, 그의 뒤에 있던 신참 소방사가 속으로 중얼거렸다고 한다. 지금은 팬, 이따가 스트레이트. 그 신참은 자신이 왜 그 문장을 알고 있는지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아마 화이트보드에서 본 적이 있었고, 선배의 입에서 들은 적이 있었고, 관찰지의 구석에서 눌러 쓴 글자를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 문장이 고립을 늦추는 데 기여했다는 사실이었다.
변하영은 소모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대신 소모의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꾸고, 소모의 대가를 최소화하는 설계를 제안한다. 불길 앞의 고립을 줄이는 일은 남자의 세계를 온전히 이해하려는 실험이기도 했다. 남자의 세계는 강인함을 내세우지만, 그 강인함은 결국 연결을 위한 장치일 때만 오래간다. 연결이 끊어지면 강인함은 둔화된 폭력으로 바뀌고, 폭력은 곧 고립의 다른 이름이 된다. 그녀는 그 변환을 누구보다 경계했다. 그래서 정서관찰지를 도구로 삼아, 장비와 언어, 몸과 의미, 개인과 팀 사이에 작은 다리를 놓았다.
서해시의 겨울은 짧게 밝아지고 길게 어두워진다. 그 어둠 속에서 불길은 여전히 나타나고, 사람들은 여전히 달려간다. 어떤 날은 승리하고, 어떤 날은 실패한다. 그러나 고립은 더 이상 조용히 자라지 않는다. 누군가 고립의 전조를 적었고, 누군가 그 문장을 읽었고, 누군가 제때 멈췄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했다. 시스템은 한 번에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한 문장, 한 호흡, 한 번의 멈춤은 한 생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한 생이 다음 생을 또 바꾼다. 불길 앞에서, 고립은 여전히 온다. 다만 이제는 고립을 견딜 언어와 절차가 있다. 그것이 서해소방서가 얻은 가장 실용적인 용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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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폭력과 수치의 기억
서해교정센터 남동동의 복도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 하얗게 들떠 보였다. 형광등이 삐걱거리며 내는 기계음, 규격화된 흰 타일의 격자, 식판 금속이 부딪힐 때 나는 얇고 선명한 딸깍 소리, 장착된 카메라의 빨간 점이 박동하듯 깜빡이는 질서. 이 모든 것이 특정한 의식을 요구했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간, 변하영은 창문 없는 집단상담실의 둥근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인쇄된 종이 묶음이 놓여 있었다. 오늘은 정서관찰지의 교정 버전, 말하자면 이곳의 언어로 변환된 도면이었다. 첫 줄은 촉발, 그다음 줄은 체감, 다음은 상상된 보복의 장면, 마지막은 멈춤 절차. 그녀는 눈으로 참가자들을 훑었다. 좌측에는 폭력 전과 세 번의 문태성, 가운데에는 성범죄로 수감 중인 최무건, 우측에는 난동과 기물파손으로 들어온 도승혁. 셋 다 몸집이 컸으나 각자의 방식으로 기울어 있었다. 한 명은 어깨가 앞쪽으로 접혀 있었고, 한 명은 팔을 의자 등받이에 걸친 채 무릎을 굳게 붙들고 있었고, 마지막 한 명은 신발의 신발끈을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묶는 데만 신경을 쏟는 중이었다. 묶이는 동안 마음의 방향이 결정되는 사람도 있으니까.
첫 번째 질문은 언제나 똑같았다. 수치가 먼저였는지, 폭력이 먼저였는지. 누구도 쉽게 답하지 못했다. 최무건이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욕을 먹었고, 그다음에는 보상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보상은 늘 동일한 경로로 흘렀고, 경로의 끝에서 누군가가 다쳤다고. 사람들은 종종 자존감이 낮아서 폭력을 휘두른다고 믿지만, 여기서 반복적으로 나온 패턴은 달랐다. 낮아서가 아니라 위태로움이 문제였고, 쉽게 부풀려지는 만큼 쉽게 찢어지는 그 얇은 막이 문제였다. 누군가가 그 막을 건드리면, 그는 상대의 얼굴을 더 크게 확대해서 보고, 자신의 손을 더 작게 축소해서 본다. 확대와 축소 사이에 잘못된 비례감각이 생기고, 그 비례감각은 결정적으로 타인의 경계를 사라지게 한다.
그녀는 관찰지를 한 장씩 넘기며 말했다. 단어를 줄이라고. 고백은 분량을 늘린다, 책임은 절차를 줄인다. 폭력의 앞에 있는 문장, 폭력의 뒤에 있는 문장. 두 문장만, 그것도 아주 구체적으로. 최무건은 잠시 생각하더니 펜으로 썼다. 나는 무시당했다고 느낀다. 나는 복도 끝에서 문을 닫는다. 문태성은 손목의 힘줄을 세우며 썼다. 내 목 뒤가 뜨거워진다. 나는 턱을 들고 주먹을 말린다. 도승혁은 뒤늦게 따라 썼다. 나는 웃음을 흘린다. 나는 내부에서 누군가를 줄 세운다. 셋의 문장은 정교하지 않았지만 작업의 방향은 분명했다. 수치의 자연사, 말하자면 몸에서 일어나는 작은 공지들. 목 뒤의 열감, 턱의 위치, 숨이 목구멍 위쪽에서 마찰을 일으키는 지점, 손가락의 접힘. 이 공지들을 알아챌 수만 있다면, 두 번째 줄, 상상된 보복의 장면으로 가는 통로는 최소한 좁아진다.
밖에서는 바람이 세게 불고 있었다. 서해시는 바람이 불 때 정지 상태의 도시처럼 보인다. 플라스틱 현수막이 하늘로 반쯤 뜯겨 날아오를 때 사람들은 늘 고개를 든다. 누군가가 하늘을 올려다보는 동안, 다른 누군가는 발 밑을 본다. 서해소방서의 장비실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벌어지고 있었다. 신참 소방사 박도현은 장갑을 장비 행거에 걸어두고 있었다. 그는 한동안 내내 떠들썩했다. 구출 현장의 흥분이 몇 날 며칠 이어지고, 말수가 늘면 웃음도 커지고, 웃음이 커지면 경계가 무뎌진다. 그 무뎌짐이 어떤 날은 대화의 외곽을 넘어 상대의 내측으로 침범한다. 며칠 전 휴게실에서 그는 장난처럼 한 말을 했다. 편하게 들으라고, 다 웃자고 하는 말이라고, 그 대상은 팀의 막내였다. 그 말은 웃음으로 포장되었지만 수치의 포장을 찢었고, 다음 날부터 막내는 장비를 고치며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팀장 안기범은 그 상황을 눈치챘다. 그리고 그날 저녁, 변하영을 불렀다.
그녀는 서해소방서에 들어올 때마다 비슷한 냄새를 맡는다. 건조기에서 막 나온 방화복 섬유의 냄새, 분말 소화약제의 미세한 석고 냄새, 젖은 고무호스에 배어 있는 바깥 공기의 냄새. 이 냄새들이 합쳐지는 지점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강한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 한다. 믿음을 의심으로 바꾸지 않으면, 의심은 타인을 향한다. 박도현에게 그녀는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관찰지의 공란 하나를 가리켰다. 정면돌파와 후퇴 사이, 멈춤을 설계하는 칸. 그는 말했다. 저는 그냥 농담을.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농담은 도구가 아니다, 농담은 은닉처다. 숨지 말고 설계하자. 오늘 밤부터 당신의 멈춤은 세 단계만 갖자. 눈을 한 번 감기, 양손을 장비에 얹기, 문장을 한 번 입 밖으로 내기. 문장은 이거다. 지금 멈춘다. 이 문장을 들은 사람은 누구든, 장비실에서 당신을 돕는다. 돕는다는 건, 당신의 멈춤을 실패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녀의 어조는 차갑지도, 따뜻하지도 않았다. 어떤 장치의 스위치를 설명하듯 사실적이었다.
교정센터에서는 오후 프로그램이 계속됐다. 영상 음성 재연, 감각 트리거 탐색, 타이밍 조절 훈련. 변하영은 폭력으로 이어지는 길을 시간을 잘게 쪼개서 본다. 촉발과 폭발 사이, 그 사이의 파편 시간들. 예를 들어, 최무건이 쓰는 단어들에서 특정 냄새가 튀어 오른다. 위계적인 자리에서 굴욕을 느꼈고, 그 굴욕이 다음 장면에서 성적 대상화로 보상되었고, 보상은 늘 익명화된 공간에서 빨랐다. 빨라서 안전해 보였고, 반복돼서 현실적이라고 믿었다. 관찰지는 이 믿음을 분해한다. 빨랐던 것을 느리게, 익명적이었던 것을 구체적으로, 외부였던 것을 내부의 감각으로. 그녀는 말했다. 욕망과 폭력 사이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줄이는 건 열감과 상상이다. 열감은 몸에 있고, 상상은 머리에 있다. 둘 사이에 하나만 집어넣자. 손을 씻는 의례, 문장을 말하는 의례, 자리를 옮기는 의례. 의례는 웃기지 않다. 의례는 경고등이다.
문태성이 손을 들었다. 의례로 사람을 바꿀 수 있냐고, 결국 사람은 재발하는 괴물 아닌가 하고. 그는 오랫동안 복도가 그에게 던진 수치의 메아리를 견디지 못했다. 누군가의 어깨가 스치거나, 눈길이 스쳐 지나가거나, 줄 서는 순서가 바뀌는 식의 작은 이벤트들이 그의 체내 지도를 흔들었다. 그 흔들림이 들어오는 때마다 그는 몸을 크게 만들었고, 몸이 커질 때 그의 세계는 오히려 더 작아졌다. 변하영은 그의 회의에 빠르게 동의했다. 사람은 재발한다. 그러니 우리는 재발을 설계한다. 재발은 실패가 아니라 실험의 반복이다. 당신의 재발은 첫 30초에 징후를 보인다. 그 30초 동안 할 수 있는 행동이 다섯 가지에서 세 가지로 줄어들면, 그 30초의 결과가 다음 3분의 가능성을 바꾼다. 그 3분은 당신의 형량에는 기여하지 않을 테지만, 다음 3년에는 기여할 것이다. 그는 고개를 숙였다. 우스운 말처럼 들렸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안에서 수치의 방향이 바뀌는 소리가 났다. 바꾸지 못한다는 단정은 체면을 살려준다. 바꿀 수 있다는 제안은 체면을 버리게 한다. 체면을 벗겨낸 자리에 책임이 들어온다.
서해소방서의 밤 근무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장비 점검이 끝나자, 박도현은 휴게실의 소파 거죽을 쓸었다. 그는 문장 하나를 자기 체내에 새길 필요가 있었다. 지금 멈춘다. 문장은 명령문이 아닌 사실 문장일수록 오래 간다. 멈춘다,가 아니라 멈춘 중이다. 그는 스스로에게 오늘 하루의 수치지도를 그려 보았다. 휴게실 문 손잡이, 커피 머신 버튼, 샤워실 바닥의 회색 배수구, 회의실 화이트보드 모서리. 수치는 장소와 연결된다. 장소는 반복된다. 반복은 설계된다. 설계는 수정된다. 수정은 대체 행동을 필요로 한다. 그는 대체 행동을 노트에 적었다. 손가락을 접었다 펼치기, 한 걸음 뒤로 물러나기, 말이 길어질 때 문장 줄이기. 장비실 벽에는 이전 회의에서 나온 경계 문장이 적혀 있었다. 오늘은 큰 소리보다 짧은 말. 그는 이 문장을 손가락으로 읽었다. 큰 소리는 수치를 덮고, 짧은 말은 수치를 보이게 한다. 보이는 수치는 다룰 수 있다.
다시 교정센터. 최무건은 오늘의 마지막 과제를 받았다. 과제의 제목은 세 문장의 사과. 첫 문장은 피해자의 체감과 사실을 묘사하는 문장, 둘째 문장은 자신의 선택과 가능했던 대안 행동을 인정하는 문장, 셋째 문장은 앞으로의 설계를 공유하는 문장. 사과는 감정을 토로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를 재설계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엔 입을 열지 못했다. 수치는 말문을 막고, 막힌 말문은 몸을 거칠게 만든다. 그녀는 기다렸다. 기다림은 도덕이 아니라 기술이다. 침묵의 길이를 재고, 시선을 세 조각으로 나눠서 배분하고, 손의 위치를 바꾸지 않는 것. 그는 드디어 세 문장을 말했다. 피해자가 느꼈을 공포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표현했고, 그 순간 자신이 가졌던 대안 행동—자리 떠나기, 손을 씻기, 경계 문장 말하기—을 인정했고, 앞으로 같은 자극에서 자신이 사용할 의례를 설명했다. 누구도 박수치지 않았다. 박수는 기분을 상하게도, 좋게도 만든다. 그러나 설계를 튼튼하게 만들지는 않는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의 긍정은 고개와 고개의 교환이다.
그날 밤 늦게, 서해시 바닷바람이 더 세차게 불었다. 바다 쪽 차고지의 셔터가 흔들렸고, 항만가로등의 노란 원들이 길게 흐려졌다. 박도현은 야간 호출에 대비해 잠시 눕기 전에 사물함 문을 열었다가 닫았다가 다시 열었다. 안쪽 선반 위에는 그의 개인 관찰지가 놓여 있었다. 가장 최근의 항목 옆에는 낯선 글씨로 적힌 문장이 있었다. 동료가 써 준 듯한, 혹은 자신이 반쯤 잠들어 있을 때 남겨 둔 듯한. 당신의 장점은 빠른 판단, 당신의 위험은 빠른 해석. 해석을 늦추기 위해서는 손을 먼저 움직이지 말고, 첫 문장을 먼저 정하라. 그는 문장을 따라했다. 지금 멈춘다. 멈춘 중이다. 멈춰 두자. 입안에서 단어들이 둔탁하게 부딪쳤다. 둔탁함은 때로 안전의 첫 신호다.
교정센터에서는 새벽 무렵, 수감자들의 기척이 줄어들었다. 그러나 수치의 기억은 조용해지지 않았다. 수치는 흔히 과거로 가는 문이라고 여겨지지만, 사실은 현재를 계속 더럽히는 물이다. 어제의 장면이 내일의 언어에 스며드는 방식으로. 변하영은 이 물이 흐르는 경로를 줄이기 위해 낯선 작업을 도입했다. 감각 추적 일기. 오늘 하루 동안 수치가 내 몸 어디에 들어와 앉았는지를 그때그때 기록하는 것이다. 목 뒤의 열감, 턱의 들림, 손가락 떨림, 심장 박동의 위치 이동. 기록 방식은 숫자와 좌표, 시간. 감정의 흔적을 감각의 지도 위로 옮기면, 도덕의 말이 기능의 말로 바뀐다. 기능은 고친다. 도덕은 지연한다. 지연된 도덕은 종종 폭발한다.
그녀는 또한 팀과 무리의 작동에 관해 말했다. 사람이 무리에 들어갈 때, 개인의 수치가 집단의 명예로 번역되는 순간이 있다. 번역은 늘 손실을 만든다. 그 손실 사이로 폭력의 면허가 기어 들어온다. 박도현의 농담은 그런 번역의 사이에서 나온 것이었다. 현장 영웅감의 잔여가 일상의 경계를 잠깐 지워 버린 결과. 영웅감은 나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영웅감엔 잠깐의 봉인이 필요하다. 봉인이 없으면, 영웅은 타인을 시험하는 사람이 된다. 봉인은 의례로 가능하다. 출동 끝의 세 동작, 휴게실 입장의 한 문장, 장비실에서의 손 위치. 바로 이것들이 봉인이다. 교정센터의 수감자들에게도 같은 봉인이 적용될 수 있었다. 면회 전과 후의 세 동작, 식판 반납 시의 한 문장, 취침 전 손 위치. 수치가 집단을 만나 폭발하지 않도록, 다리 같은 사소한 구조물들을 세우는 것.
문태성은 어느 날 물었다. 그럼 당신도 수치를 느끼냐고, 당신의 수치는 어디에 있냐고. 그녀는 잠깐 웃었다. 의사는 물이 새지 않는 사람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어디에서 새는지 아는 사람이면 충분하다. 그녀는 자신의 관찰지를 열어 보여 주었다. 오늘의 촉발, 목소리가 높아진 순간, 환자에게 경고하기 전에 내 어조가 굳어지는 경로. 멈춤의 문장, 나는 지금 멈춘다. 그녀는 말해 버렸다. 내가 멈추지 않으면, 당신은 나를 미워할 것이다. 미움은 대체로 설계를 망친다. 그러니 당신과 내가 지금 어색해지더라도, 설계를 건지자. 문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고개는 또 한 번 교환되었다.
한편, 서해소방서의 새벽 호출은 항만창고 근처에서 울렸다. 산더미처럼 쌓인 알루미늄 프로파일, 포장 비닐, 물류 리프트의 금속 사다리. 불은 작았지만, 작은 불은 밤에 크다. 팀이 진입했을 때, 박도현은 자신도 모르게 새로운 순서를 실행하고 있었다. 눈을 한 번 감고, 양손을 장비에 얹고, 문장을 말했다. 지금 멈춘다. 멈춘 중이다. 멈춰 두자. 라디오에는 다른 목소리들이 얇은 철사를 타고 오갔다. 검은 연기 너머, 누군가의 그림자가 스쳤다. 그는 지난번 휴게실의 말을 떠올렸다. 그리고 다른 문장으로 바꿨다. 오늘은 큰 소리보다 짧은 말. 그는 짧게 말했다. 좌측은 느리다, 우측은 빠르다. 팀이 움직였고, 노즐이 열렸다 닫혔다 열렸다. 현장의 작은 승리, 무익해 보이지만 누군가의 수치를 줄이는 승리. 로프가 감기듯 팀의 호흡이 다시 연결되었다.
교정센터의 프로그램 마지막 시간, 변하영은 한 장의 종이를 벽에 붙였다. 오늘의 공통 관찰. 자극과 도발 사이에 낀 첫 장면. 세 사람의 첫 장면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눈 앞의 사람이 사람에서 표적으로 바뀌는 순간. 표적화는 언어로도 드러난다. 그, 그녀, 당신, 너. 존칭의 흔들림, 호칭의 생략, 비격식의 갑작스러운 도입. 그 단어를 들은 자신의 몸의 위치를 기록하라고, 마치 역장을 지나는 금속의 느낌처럼. 다시 그녀는 말했다. 수치는 나쁘지 않다. 수치는 신호다. 신호는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다. 다만 신호를 해석하는 사람이 당신일 때, 신호는 의미를 얻는다. 해석을 타인에게 밀어 넘길 때, 신호는 구실이 된다. 구실은 폭력을 낳는다.
서해시는 아침이 오기 직전이 가장 어둡다. 자동차 유리 위 소금 같은 이슬, 신문 더미를 묶은 흰 끈, 파란 방수포가 바람에서 만든 작은 산맥, 지도에는 표시되지 않는 골목의 입구에서 피어오르는 따끈한 어묵 국물의 김. 도시의 하부 구조로 내려가면, 모든 것이 배선을 갖고 있다. 교정센터의 카메라, 소방서의 무전기, 항만의 경광등, 그리고 사람들의 신경. 배선은 어딘가에서 얽히고, 얽힌 곳에는 흔히 사소한 퓨즈 하나가 있다. 변하영이 일러준 멈춤의 문장, 손의 위치, 눈을 감는 1초, 사과의 세 문장 같은 것들이 퓨즈다. 퓨즈가 있으면, 모든 전류가 한 번 더 생각한다. 한 번 더 생각하는 전류는 사람을 살린다.
그녀는 마지막으로 세 사람에게 말했다. 당신들의 수치는 당분간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당신들을 구원할 것이다. 사라지지 않는 것을 견디는 기술이 바로 설계이기 때문이다. 설계는 당신이 만든다. 나는 당신들의 설계자라기보다, 설계표를 나눠 주는 사람일 뿐이다. 대답 대신 고개들이 움직였다. 고개는 그날, 세 번 교환되었다. 세 번의 교환은 작은 회로를 만들었다. 회로가 닫히는 소리, 딸깍. 그 소리를 듣는 순간, 서해시의 바람이 잠깐 멈춘 듯했다. 물론 바람은 여전히 불었다. 다만 이제 어떤 사람들은 바람 앞에서 손을 어디에 둘지 알았다. 그리고 그 손의 위치가 폭력과 수치의 기억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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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붉은 경보와 불안정한 질서
서해소방서의 하루는 경보음으로 시작해 경보음으로 끝난다. 휴게실의 소파는 늘 약간 기울어 있고, 무전기는 한 번도 완전히 침묵하지 않는다. 팀장은 대개 교대 직전에 커피 포트를 채우며 장비 점검표를 훑고, 신참은 장비실에서 호스의 주름을 펴다가 자기 손가락의 떨림을 알아차린다. 그 떨림은 커피 때문이 아닐 때가 더 많다. 불규칙하게 몰려오는 호출, 예측할 수 없는 현장,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상상. 이 직업의 시간은 개인이 통제하는 시간이 아니라, 도시 바깥에서 생긴 사건이 안쪽으로 밀고 들어오는 시간이다. 그러니 서해소방서의 남자들은 종종 두 개의 시계를 산다. 하나는 벽에 걸린 24시간 시계, 다른 하나는 몸 속의 경보 시계. 벽의 시계는 시간이 흐르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몸의 시계는 언제든 울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켜 둔다.
변하영이 소방서에 처음 들어온 날, 그녀는 이중 시계를 사람들의 얼굴에서 읽었다. 각자의 표정은 대체로 성실했고, 어조는 간결했다. 그런데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경보가 울리지 않을 때조차 경보에 반응하는 몸의 준비 상태였다. 허리에 걸치는 안전벨트의 위치가 늘 같고, 장갑을 벗어두는 각도가 일정하며, 휴게실 문 손잡이를 잡는 손목의 각도가 깔끔했다. 이 일상의 정돈은 숙련의 증거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불안정한 질서의 징후였다. 바깥의 혼돈이 너무 클 때 사람은 실내의 사소한 질서를 강화한다. 책등을 같은 높이로 맞추고, 장비의 방향을 동일하게 배치하며, 언어를 축약한다. 질서는 안정을 주지만, 지나친 질서는 경직을 낳는다. 경직은 출동 직전의 판단을 날카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귀환 이후의 삶을 몹시 좁게 만든다.
그녀는 첫 집단 상담에서 칠판을 두 칸으로 나눴다. 왼쪽은 질서, 오른쪽은 혼돈. 그리고 가운데 좁은 기둥에 경보라고 썼다. 출동은 이 두 세계를 연결하는 엘리베이터와 같다. 질서의 층에서 타서 혼돈의 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야 한다. 문제는 올라오는 과정에서 승강기가 종종 멈춘다는 사실이다. 현장에서의 감각, 아드레날린의 잔향, 동료의 표정, 실패의 상상 같은 것들이 기계의 이빨 사이에 작은 모래처럼 끼어든다. 그래서 그녀가 도입한 도구가 정서관찰지였다. 이번 장의 관찰지는 시점이 세 개로 나뉘어 있었다. 경보 전 5분, 경보 후 30분, 귀환 뒤 2시간. 각각의 시점에서 몸의 신호, 떠오르는 장면, 스스로에게 건네는 문장을 기록한다. 기록의 목적은 회고가 아니라 복구다. 경보가 울릴 때 사람이 세계를 읽는 기준은 평소와 다르다. 복구는 다시 평소의 기준으로 돌아오는 기술이다.
박도현은 자신이 왜 복구에 서투른지 이해하고 싶었다. 그는 현장에서 유능했다. 호스 라인을 잡는 손은 정확했고, 열과 연기의 방향을 읽는 감각도 빠른 편이었다. 유능함은 또 다른 유능함을 낳았다. 복귀하면 그는 동료들 사이에서 중심이 되었고, 그 중심성은 농담을 쉽게 만들었다. 농담은 휴식의 기술이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의 농담은 점점 길어졌고, 길어진 농담은 점점 누군가의 경계를 건드렸다. 그는 정확히 왜 그런지 몰랐다. 변하영은 그에게 관찰지의 문장을 줄이라고 했다. 경보 전, 경보 후, 귀환 뒤. 세 시점에서 단 한 줄씩만. 이 한 줄들이 연결되면, 당신의 복구가 어디에서 멈추는지 보일 거라고.
며칠 뒤, 작은 창고 화재가 있었다. 출동은 신속했고, 진압은 깔끔했으며, 귀환도 제시간이었다. 박도현은 그날의 관찰지를 고쳐 썼다. 경보 전 5분: 내 어깨가 스스로 올라간다. 경보 후 30분: 나는 더 빨리 움직일 수 있었을 것 같다. 귀환 뒤 2시간: 누군가에게 설명하고 싶다. 그녀는 그 세 문장을 유심히 보았다. 설명하고 싶은 마음은 종종 과잉 통제의 징후다. 과잉 통제는 불안이 만든 질서의 방식이다. 경보의 바깥에서조차 경보를 재연하려는 마음. 사람의 생리에서는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외부 자극이 강해지면, 내부는 자극의 부재를 불편해한다. 그래서 과잉 설명, 과잉 농담, 과잉 점검 같은 형태로 자극을 되돌린다. 표면적으로는 활발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기 안의 공백을 메우고 있는 것. 그녀는 말했다. 당신의 귀환 뒤 2시간을 다른 방식으로 채워야 한다. 설명을 줄이고, 몸을 회수하는 절차를 늘리자. 호흡을 길게 내쉬는 시간을 4회, 장비실에서 손을 고정하는 시간을 30초, 벽을 본 채 서 있는 시간을 1분. 세 가지 의례를 한 묶음으로 만들자.
안기범 팀장은 조직 전체의 리듬을 바꾸는 문제에 관심이 있었다. 끊임없는 경보는 개인의 신경뿐 아니라 팀의 문화도 파고든다. 경계가 무뎌지고, 농담이 파고들며, 책임의 선이 흐려진다. 특히 야간 당직의 몇 시간, 경보가 잠깐 뜸해지는 시간대에 공간이 느슨해진다. 느슨함은 필요하지만, 느슨함의 끝자락에서는 종종 불편한 침묵이 생긴다. 누군가는 스마트폰 화면을 스크롤하고, 누군가는 몸을 과하게 트레이닝하며, 또 다른 누군가는 눈을 감은 채 귀를 열어 둔다. 변하영은 이 느슨한 시간대를 위해 조직 관찰지를 만들었다. 관찰의 주체는 개인이 아니라 팀. 소파의 배치, 무전기의 볼륨, 커피 포트의 위치, 장비실로 들어가는 발걸음의 빈도. 이 환경적 요소들을 작은 실험의 단위로 삼았다. 커피 포트를 휴게실에서 3미터 더 멀리 두면 대화가 길어지는지, 무전기 볼륨을 낮추면 순간적으로 올라가는 긴장도가 어떻게 변하는지, 소파의 방향을 창문 쪽으로 틀면 눈동자의 움직임이 느슨해지는지. 팀의 질서가 환경에서 시작해 언어로 이어지는 과정을 눈으로 보이게 만들자는 의도였다.
그녀가 가장 조심스럽게 다루는 주제는 개인의 심부에 자리한 불안과 욕망의 교차였다. 이 일의 남자들은 흔히 바깥의 불을 끄는 데 능숙하지만, 안쪽에서 자꾸만 생겨나는 작은 불을 낯설어했다. 경보가 잦아질수록 사람은 자신에게 어떤 보상을 약속한다. 그 보상은 대개 손에 잡히지 않는 감정의 형태로 다가온다. 높은 파형의 긴장 뒤에 오는 낮은 파형의 위안, 그 위안을 얻는 다양한 통로. 때로는 스크린의 끝없는 이미지, 때로는 칭찬의 예상, 때로는 누군가의 시선을 소유했다는 착각. 겉으로 드러나는 표지는 다양하지만, 그 바닥에서는 같은 일이 일어난다. 욕망은 통제를 갈망하고, 통제가 불안으로 변환된다. 무엇을 원한다고 느낄수록, 그 무엇을 잃을 수 있다는 상상도 함께 커진다. 그래서 어떤 밤, 누군가는 설명을 늘리고, 또 어떤 밤, 누군가는 어색한 침묵을 농담으로 덮는다. 그녀는 이 현상을 직접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관찰지에 이런 문장을 덧붙였다. 불이 꺼진 뒤에도 내 안에서 소유하려는 마음이 켜질 때, 나는 숨을 둘로 나누었다 갈무리한다. 한 번은 원하는 것의 윤곽을, 한 번은 두려워하는 것의 윤곽을. 윤곽을 분리하면, 실체를 섞어 보지 않게 된다.
장인수는 오십을 바라보는 베테랑이었다. 그는 대체로 말을 아꼈다. 단정했고, 책임감이 강했으며, 출동 때마다 장비의 작은 소음까지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몇 달 그는 잠을 얕게 잤다. 경보가 울리지 않는 시간에도 그의 머릿속에서는 빨간 불빛이 깜박였다. 귀환 뒤 2시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혼자 장비실에 갔다. 손등을 호스에 댔고, 커넥터를 두 번 돌려 보고, 노즐의 끝을 바라봤다. 돌아와서는 휴게실의 불을 낮췄다. 화면을 켰다가 껐다. 화면에는 지나가는 이미지들이 아주 빠르게 바뀌었다. 젊음의 상징, 힘의 과장, 소유의 약속, 승인과 관심의 신호. 그 이미지들은 그의 눈동자에 잠깐 반짝였다가 사라졌지만, 몸의 아래쪽에서는 미세한 긴장이 올라왔다. 그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기침을 했다. 귀끝이 뜨거웠다. 그리고 이유 없는 초조함에 사로잡혔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듯했지만, 사실은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더 잘 알고 있었다. 다음 날, 그는 정서관찰지에 짧게 적었다. 귀환 뒤 2시간: 내 마음이 어딘가를 빼앗기고 있다는 예감. 변하영은 그 문장을 오래 보았다. 욕망의 언어가 불안의 언어로 뒤집힐 때, 사람은 스스로를 혼란스럽게 느낀다. 그녀는 해석을 덧붙이지 않고 의례만 제안했다. 그 시간대에는 화면을 끄고, 노즐의 금속을 만지지 말 것. 대신 차가운 물을 두 모금 마시고, 앞서 적어 둔 경계 문장을 천천히 말 것. 오늘은 큰 소리보다 짧은 말. 이 간단한 의례는 물의 온도처럼 확실한 경계를 제공한다. 경계가 생기면, 혼란이 줄어든다.
상담에서 그녀는 삶의 설계를 이야기할 때도 구조를 사용했다. 질서와 혼돈의 두 기둥 사이에 의미라는 가로대를 하나 더 그었다. 의미는 대단한 신념이나 거창한 목표가 아니라, 반복 가능한 책임의 형태로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책임은 이미 충분히 크다. 하지만 개인의 책임은 종종 흐릿하다. 그래서 그녀는 각자에게 세 가지 책임을 고르게 했다. 몸의 책임 하나, 관계의 책임 하나, 기술의 책임 하나. 몸의 책임은 수면과 호흡과 식사. 관계의 책임은 팀 안에서 한 사람을 떠올려 그의 하루를 편하게 만드는 구체적 행동 하나. 기술의 책임은 자신이 그날 반드시 점검해야 할 3분의 숙련. 이 세 책임은 경보가 울리지 않을 때의 질서를 만들어 준다. 질서는 의미를 낳고, 의미는 복구를 돕는다. 의미가 복구를 돕기 시작하면, 사람은 자신을 채찍질하는 대신 자기 설계를 신뢰할 수 있다.
박도현은 관계의 책임을 막내에게 정했다. 점검표의 서명을 함께 확인해 주는 것이었다. 그는 버릇처럼 먼저 움직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올 때마다 손의 위치를 바꾸는 의례를 실행했다. 양손을 장비에 얹고, 눈을 한번 감고, 짧은 문장을 말한다. 지금 멈춘다. 멈춘 중이다. 멈춰 두자. 세 문장 중 하나만 말하더라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그는 서서히 배웠다. 멈춤은 기권이 아니었다. 멈춤은 의미를 선택하기 위한 일시 정지였다. 정지가 가능해지자, 농담은 구체가 되었고, 구체는 누군가의 경계를 넘어가지 않았다.
한편 장인수는 밤의 의례를 바꿨다. 화면을 끄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웠다. 그는 대신 휴게실 테이블 위에 공구 하나를 올려 두었다. 스패너. 출동과 무관하게 손에 올리면 즉시 현장의 감각이 떠올라 복구에 방해가 되는 도구였다. 그가 스패너를 바라보며 숨을 두 번 나누는 순간, 현장의 잔향이 올라오고 있다는 신호로 삼았다. 그 신호를 의식하고 나면, 그는 창가에 서서 1분 동안 바깥의 어둠을 봤다. 어둠은 무섭지 않았다. 어둠은 오히려 마음의 외곽을 드러내 주었다. 바닷바람이 드문드문 가로수 잎을 흔들었다. 그의 어깨는 조금 내려갔다. 다음날 아침, 그는 관찰지에 새로운 문장을 적었다. 귀환 뒤 2시간: 나는 내 시간을 소유할 수 있다. 소유하고 싶다는 마음과 소유할 수 있다는 마음은 전혀 다른 셈법을 갖는다. 전자는 긴장을 만들고, 후자는 안정감을 만든다. 그는 그 차이를 몸으로 알기 시작했다.
팀 차원의 실험도 서서히 효과를 보였다. 커피 포트의 위치가 바뀌자 대화가 길어졌다. 무전기 볼륨을 낮추자 눈동자의 움직임이 덜 잔뜩 모였다. 소파의 방향을 창으로 틀자 대화의 톤이 반 발 낮아졌다. 안기범은 이 변화를 숫자로 기록했다. 관찰지는 감각의 언어만 다루지 않았다. 짧은 체크박스와 시간표가 포함되어 있었고, 실험의 결과는 다음 주 회의에서 공유됐다. 공유의 어조는 평가가 아니라 기능 점검에 가까웠다. 무엇이 우리를 복구시키는가. 무엇이 우리를 재발화시키는가. 팀은 점점 자기의 명확한 답을 갖게 되었다. 복구는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팀이 제공하는 환경은 혼자 하는 작업을 쉽게 만들었다.
변하영이 마지막으로 강조한 것은 의미의 저장 방식이었다. 의미는 말로 기억될 때 흔들린다. 대조적으로, 의미는 의례로 저장될 때 잘 버틴다. 그래서 그녀는 각자에게 의미의 최소 단위를 정하게 했다. 누군가는 부츠를 묶는 매듭, 누군가는 사물함 문을 닫는 힘의 크기, 누군가는 경계 문장 하나. 이 최소 단위는 경보가 울린 뒤에도, 귀환 뒤에도, 심지어 휴가 날에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저장된 의미는 혼돈의 층에서 질서의 층으로 올라오는 승강기의 버튼과 같다. 버튼은 크지 않다. 하지만 정확한 위치에 있을 때, 사람은 자신이 다시 올라오고 있음을 믿을 수 있다.
밤이 깊어가던 날, 예고 없이 큰 화재가 났다. 오래된 목조 주택의 연기가 좁은 골목을 타고 번졌다. 팀은 신속하게 진입했고, 바람의 방향이 한 번 바뀌는 순간을 통과해야 했다. 그 순간, 박도현은 두 번째 문장을 속으로 말했다. 멈춘 중이다. 그건 그가 스스로에게 내린 지시가 아니라, 상황을 묘사하는 관찰이었다. 묘사는 마음을 차분하게 한다. 그는 좌측 라인을 보정했고, 장인수는 창문 쪽의 온도 변화를 읽었다. 모두가 짧게 말했다. 큰 소리보다 짧은 말. 노즐이 열리고 닫히는 리듬이 맞아 들어갔다. 혼돈의 층에서 질서의 층으로 올라오는 길은 그때처럼 머릿속에 선명해진다. 현장이 끝나고 돌아오는 차 안, 누구도 과장된 농담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깊고 느린 숨이 몇 번 오갔다. 각자는 자기 의례를 수행했다. 손을 제자리에 둔 채, 창밖 어둠의 윤곽을 확인하며, 속으로 한 문장을 짧게 되뇌었다. 나는 내 시간을 회수하는 중이다.
서해시는 그날 새벽 바람이 잦아들었다. 소방서의 복도는 여전히 곧았고, 장비실의 금속은 차가웠다. 그러나 몇몇 사람들의 안에서는 보이지 않는 구조가 조금 바뀌어 있었다. 질서와 혼돈의 두 기둥 사이에 의미의 가로대가 하나 더 단단히 걸렸다. 그 가로대는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경보가 울릴 때마다 사람들의 손이 그곳을 짚었다. 손의 위치가 바뀌면, 마음의 위치도 바뀐다. 마음의 위치가 바뀌면, 욕망의 언어가 불안의 언어로 무너지는 일을 덜 겪게 된다. 혹은 그 반대의 전이를 미리 감지해 다잡을 수 있다. 그것이면 충분했다. 불은 언제든 난다. 싸워야 할 일은 계속 온다. 그 사이사이에 자신을 회수하는 기술을 갖춘 사람은, 혼돈 속에서도 자기 질서의 작은 섬을 지킨다. 그리고 그 작은 섬이 모여 팀의 육지를 만든다. 그 육지가 넓어질수록, 서해소방서의 남자들은 더 이상 소모되지 않고, 더 오래 버틴다. 의미는 그렇게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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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언어의 감시와 쇠창살의 그림자
새벽 네 시의 서해교정센터, 경보음과 커피머신이 동시에 숨을 고르는 순간, 별표가 잔뜩 찍힌 공문들이 복도 게시판을 점령한다. “용어 사용 지침. 죄수 대신 수감된 사람. 단정적 표현 금지. 사유화된 지칭 금지.” 규정은 규정을 낳고, 약어는 약어를 낳는다. SOP-IPC-7001, TRM-204, BWC-Log. 카메라 눈동자가 미세하게 흔들릴 때마다 문패 위 라벨프린터는 새로운 진실을 뱉어낸다. 말의 온도가 통제되는 곳에서 분노는 차가운 금속으로 응결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재갈은 서류철의 등뼈를 타고 몸 안으로 천천히 옮겨 붙는다.
하루의 첫 회의는 언어로 시작한다. “호칭은 반드시 최신 버전으로, 문구는 현행 인권 매뉴얼에 부합하는 범위에서.” 행정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윤강석은 주머니 속 메모지를 만지작거린다. 장 하나를 접을 때마다 종이는 조금 더 부스러지고, 마음은 조금 더 경직된다. 김교도는 어젯밤 쓰던 보고서에서 “지시”를 “안내”로 바꾸고, “통제”를 “안전 확보”로 바꾸고, 마지막으로 “억제”를 “사건 예방 프로토콜”로 바꾸느라 시간표를 반 토막 냈다. 부드러운 단어들이 문장을 통과할수록, 힘줄은 더 뻣뻣해지고 치아는 더 악물린다. 이곳에서는 말이 곧 위험이니까, 말투 하나가 소송의 씨앗이 될 수 있으니까.
변하영은 안전화 끈을 묶으며 현관 금속탐지대를 지난다. 오늘 그녀의 가방에는 정서관찰지가 더 많이 들어 있다. 표지에는 딱딱한 기호 대신 연필로 그린 물결이 있다. “감정은 통로입니다.” 그녀가 간단히 말하자 몇몇은 피식 웃고 고개를 돌린다. 이곳의 시간은 분으로 나뉘지 않는다. 사건 간 평균 간격, 카메라 프레임율, 휴게실 의자 교체 주기, 그리고 민원청구 답변 기한들로 측정된다. 정서라는 물결은 언제든 철조망에 걸려 찢기고, 찢겨진 파편은 우편함과 인트라넷과 감사보고서에 다시 붙여진다.
복도 끝 휴게실에는 해외 보고서를 프린트해 테이프로 붙여 놓았다. 첫 페이지에는 검은색 방패 모양 엠블럼이 크게 박혀 있다. “CORRECTIONS.” 사진 아래 작은 글씨들은 이 직업의 또 다른 지형을 말해 준다. 어떤 지역에서는 교도관의 34퍼센트가 외상후 스트레스의 징후를 보인다고 하고, 자살 위험은 일반인의 두 배, 모든 직종 평균보다 39퍼센트 높다고 한다. 영국에서는 절반이 넘는 교도관이 임상적으로 유의미한 증상을 보였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에서는 한해에 여덟 명이 극단적 선택을 했던 기록이 남아 있고, 위험군 비율은 다섯 명 중 한 명 이상으로 보고된 바 있다.
그녀가 기록을 읽는 동안, 복도 저쪽에서 라디오가 쨍 하고 터진다. “언어 달력, 업데이트 사항 배포.” 말은 더 정교해지고, 위험은 더 영리해진다. 윤강석은 작아진 목소리로 속삭인다. “요즘은요, 말이 칼이에요. 누가 다쳤는지 판사 앞에서 가리려면, 우리가 먼저 피를 닦아야 하거든요.” 말 끝에 종이가 하나 더 책상에 떨어진다. 서해교정센터 민원 통계. 전년도, 수감자가 제기한 고소·고발이 622건, 피소 직원 1,241명. 대부분은 각하되거나 무혐의로 끝났지만—서류로 증명하기 전에는 끝난 것이 아니다—그 사이 사람들은 잠을 잃고 자존을 잃는다.
가끔은 쇠창살 바깥에서도 그림자가 따라온다. 의도적 침묵으로 변조된 통화 연결음, 이름을 부르지 않는 낮은 목소리, “너 말고 네 가족을 보자”라는 식의 문장들이 어둠 속에서 길을 찾는다. 멀리 바다 건너에서는 집 앞에 나타난 아이들이 휴대전화를 흔들며 가족을 협박했다는 기사 스크랩도 돌아다닌다. 이곳의 교도관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타인의 사례는 곧 나의 대비책이자, 내일의 악몽을 위한 리허설이니까.
숫자들은 늘 제 발로 들어온다. 1인당 담당 수용자 3.4명. 이 수치는 사람의 이름을 지운 채 권한과 책임의 비율을 표로 바꾼다. 과밀 수용률은 122퍼센트였던 해가 있었고, 그해 이후 폭행 사건은 더 잦아졌다. 몇 년 사이 교도관 폭행 건수가 세 배 이상 늘었다는 자료는, 문서의 구석에서 주먹을 꽉 쥐고 있다. 이 수치들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으면서도 늘 발언권이 많다.
낮에는 절차가, 밤에는 심장이 지휘한다. 인력난은 결근이 아니라 초과근무의 또 다른 이름이고, 어떤 지역에서는 “하루 열여섯 시간, 주 다섯 번”이 당연했던 시절의 목격담이 안전화 밑창처럼 닳아 있다. 버거운 환경을 버거운 단어로 덮어 버리면—너무 잔혹하고 끔찍한 장소, 그 말 속에서 사람들은 빠져나올 출구를 찾는다—어느새 누군가는 다음 조를 위해 알람을 맞춘다. 사회는 이 전투를 이직률, 지원율, 보충 인력으로 측정한다. 현장 사람들은 그 전투를 악몽, 플래시백, 과각성으로 기억한다.
정치적 올바름은 목적지로서는 옳을지 모른다. 사람을 사람으로 부르고, 모욕의 잔여물을 공문에서 지우는 일. 그러나 그 목적지를 향한 길은 종종 미로처럼 설계되며, 미로의 우회로마다 누군가의 피로가 납작하게 깔린다. 절제된 언어가 현장을 치유하기도 하지만, 법적 위험이 그 언어의 속도를 조절하는 순간, 말은 방패이자 족쇄가 된다. “대응”과 “침묵” 사이의 골목길에서 교도관들은 종종 주머니 속 손가락으로 도망로를 그린다. 그 길은 어김없이 보고서, 감사, 내부조사로 이어진다. 그 길들이 서로 교차하는 곳에서, 분노는 자신을 “선량한 직무수행의 증거로서의 침착”으로 변장한다.
이날의 상담은 휴게실 옆 작은 교육실에서 시작됐다. 변하영은 백열등의 미세한 깜박임을 가리키며 웃는다. “빛도 여긴 긴장하네요.” 그녀는 의자 네 개를 동그랗게 맞추고, 정서관찰지를 각자 앞에 펼친다. 표 안에는 관계, 위험, 수치, 모욕, 불확실성, 소송 가능성, 가족 걱정 같은 단어들이—딱지처럼—이미 인쇄돼 있는 듯 보인다. 그녀는 말한다. “오늘은 단어를 바꾸지 말고, 몸의 언어부터 적어 봅시다. 턱은 굳어 있나요, 어깨는 올라가 있나요, 손은 어디를 향하나요. 그리고 생각의 자동완성은 어디로 튀나요. ‘큰일 났다’로 가는지, ‘또 이거다’로 가는지.” 그들이 펜을 쥘 때, 카메라의 빨간 불은 천장 구석에서 아주 작은 알약처럼 반짝인다.
정서관찰지는 이곳에서 드물게, 사건을 “의미”로 바꿀 수 있는 도구다. 그녀는 절차를 지우지 않는다. 오히려 절차가 감정의 진로를 결정하지 않도록, 감정에 우선 진로를 부여한다. 첫째, 몸의 신호를 기록한다. 둘째, 머릿속 자동문장을 적발해 그 문장 옆에 물음표를 붙인다. 셋째, 지금 여기에서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행동 하나—호흡 세 번, 턱 풀기, 시선 한 번 창밖으로 던지기, 동료에게 신호 보내기—를 택한다. 넷째, 사건 기록의 초안을 만든다. 기록은 미래의 소송을 위한 무기가 아니라, 오늘의 자신을 보호하는 울타리라는 것을 확인한다. 그녀의 설명은 이곳의 문법을 교란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문법의 빈 칸을 채워 주는 방식으로, 감정과 사실의 경계를 덧칠한다.
윤강석은 망설이다가 한 줄을 적는다. “오늘 오전, 모욕적 언사. 나의 반응, 목이 조이는 느낌. 생각, ‘또 나구나.’ 행동 충동, 소리 지르고 싶었음. 대안, 침묵 대신 짧은 표준문장 사용.” 변하영이 고개를 끄덕인다. “좋습니다. 침묵과 표준문장은 다릅니다. 표준문장은 당신의 인간성을 지우는 말이 아니라, 당신의 책임을 보호하는 언어입니다. 다만 그 문장을 말하기 전에, 당신의 몸이 먼저 당신 편이 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녀의 목소리는 얇고 단단한 금속선처럼 펜촉을 따라 움직인다.
그녀는 건조하지만 강경한 문장도 숨기지 않는다. “모욕을 견디는 건 미덕이 아니라 비용입니다. 비용을 지불할 때마다 영수증을 남기세요. 날짜, 시간, 장소, 동료, 상황, 당신의 말, 상대의 말. 기록을 사랑해야 합니다. 규정은 당신을 벌하기도 하지만, 잘 써진 기록은 당신을 지킵니다.” 그리고 덧붙인다. “가능한 한, 팀 단위로 호흡을 맞추세요. 혼자 강해야 한다는 오래된 신화는 당신을 쓰러뜨립니다.” 휴게실 창문을 타고 아주 먼 파도 소리가 환청처럼 스며든다.
정치적 올바름의 길은 이곳에서 더 어려운 길이다. 누군가가 존중받기 위해 수정된 한 단어가, 다른 누군가의 불면으로 전가되는 순간들이 있다. 그러나 변하영은 길 위에서 방향표지판을 바꾸는 대신, 길가의 어깨를 넓힌다. “존중받아야 할 사람과 존중해야 할 사람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는 것, 그게 우리가 오늘 할 일입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제안한 것은 근무 말미 5분의 공동 디브리핑—사실과 감정, 둘 다를 말하는 짧은 관행—이었다. 규정에는 없는 절차, 그러나 규정이 의도한 세계를 보호하는 습관.
퇴근 종이 울리고, 복도는 다시 약어들과 공문들로 가득 찬다. 언어는 여전히 주의 깊게 걸러지고, 카메라는 여전히 모든 것을 기억하려 든다. 하지만 오늘, 서류철 한가운데에는 네 장의 정서관찰지가 끼워져 있다. 낡은 펀치의 둥근 구멍들이 흔들리던 호흡의 박자를 닮았다. 그리고 아주 작지만 분명한 변화가 생겼다. 말이 더 조심스러워지는 대신, 서로의 눈빛이 조금 덜 조심스러워졌다. 이곳의 질서는 여전히 복잡하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단순해졌기 때문이다. “나는 나를 관찰할 수 있다.” 그 사실 하나가, 언어의 벽과 쇠창살 사이에서 자기 자신을 잃지 않도록 지켜 주는, 가장 오래가는 방패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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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교도관들이 받는 다른 고통
새벽기온이 한강 하구를 따라 내려오면 서해교정센터 외벽은 더 차갑게 식었다. 변하영은 출입구 옆 구내식당의 커피 머신 앞에서 오래 선 채, 기계가 내는 미세한 소음이 교도소의 기본 박동과 어떤 방식으로 겹치는지 듣고 있었다. 야간근무를 막 끝낸 교도관의 눈동자는 변함없이 붉었다. 그의 이름은 안 적어두기로 했다. 이곳에선 이름이 곧 표적이 될 수 있어서였다. 대신 그는 자신의 근무 기록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지난달만 초과근무 백사십여 시간, 일곱 번째 장례식, 네 번째 아이 학교 행사 불참. 변하영은 종이와 펜을 내밀고 정서관찰지를 함께 펼쳤다. 그가 첫 칸에 적은 말은 단 세 글자였다. “항상 긴장.”
그들은 먼저 몸이 기억하는 감정을 훑었다. 어젯밤 복도의 형광등이 깜박일 때 올라온 심박, 보안문이 닫히는 금속성 진동, 점호 직후 울컥 올라온 이유 없는 분노, 그리고 귀가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과각성. 변하영은 관찰지의 두 번째 열에 시간대를 쪼개 적게 했다. 근무 전 30분, 폭언을 들은 직후 3분, 상황 종료 20분 뒤, 퇴근길 횡단보도 앞 1분. 각 시점의 몸 감각을 아주 촘촘히 기록하면서, 감정이 단단한 덩어리가 아니라 얇은 층들로 이루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화가 난 줄 알았는데, 그 앞이 두려움이네요. 그 앞에는 피곤이 있고.”
변하영은 설명했다. 감정의 층을 알아야 회복의 순서를 정할 수 있다고. 두려움을 곧장 설득하려 들면 실패한다. 먼저 몸의 경보를 낮추고, 그다음에 의미를 재구성해야 한다. 그래서 관찰지에는 늘 세 번째 열을 둔다. 사실과 해석을 분리하는 칸이다. “수용자 A가 악담을 했다”는 사실과 “나는 무시당했다”는 해석은 다르다. 해석이 뒤틀린 날은 대부분 수면이 부족했고, 수면이 부족한 날은 교대표가 밀려 있었다.
이 건조한 표는 곧 하나의 풍경으로 바뀐다. 인력난으로 늘어난 근무시간, 과밀 수용으로 잦아진 폭력, 그에 따라 빈번해진 비상 호출. 한국의 교정시설은 정원을 20퍼센트 이상 넘겨 운영되는 시기가 있었고, 그 사이 교도관 폭행 사건은 몇 년 사이 세 배 넘게 늘었다. 이 숫자들은 국제 보고서의 표가 아니라, 서해교정센터 복도 바닥의 흠집으로 읽힌다. 매번 제압 매뉴얼을 따라 움직였어도 다음 날엔 또 다른 위기가 생겼다. 과로는 한 사람을 능숙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그 능숙함은 곧 체온이 빠져나간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 이야기는 추상적인 진단이 아니다. 해당 사실은 연구·보도 자료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며, 구체적 수치와 함께 현장의 과중업무와 폭력 증가가 교도관들의 신체·정신 건강을 위협한다고 요약되어 있다. 보고서 2쪽의 과로·과밀·폭력 증가 도표를 참조하라.
밤이 깊어질수록 교도관의 세계는 집과 더 멀어졌다. 아이가 잠든 얼굴을 문틈으로 확인하는 대신, 그는 새벽에 자해 현장을 수습하고 돌아오곤 했다. 어떤 날은 미성년 수용자의 시신을 처음 발견한 기억이 밤마다 플래시백으로 되살아났다. 트라우마를 다루는 교과서적 언어로는 그 충격을 설명하기 어렵다. “냄새가 먼저 떠오르고, 그다음이 조용함이었어요.” 그는 말했다. 설명을 더 요구하지 않기로 했다. 이런 종류의 침묵을 존중하는 것이 이 직업군과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했다. 영국과 미국에서 진행된 조사에서는 교도관 과반이 악몽, 과각성 같은 증상을 보이고, 한국에서도 동료의 자살 소식이 같은 해에 연달아 들리는 상황이 보고되었다. 이 통계는 그가 매일같이 적어내려간 관찰지의 선들 사이에서 의미를 얻는다. 그가 겪는 것은 예외가 아니라 패턴이다. 해당 수치는 보고서 1쪽의 PTSD·자살 위험 자료에 정리되어 있다.
그의 고통은 단지 구타나 위협으로 생기지 않았다. 더 은밀한 형태는 “내부의 어른스러움”이라는 가면에서 자랐다. 이 조직에는 한 문장이 오래 돌아다닌다. 약해 보이면 안 된다. 그 문장은 동료애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서로의 상처를 사각지대에 밀어 넣는 규칙으로 작동한다. 한 직원은 진단명을 받을까 두려워 상담을 미루고, 다른 직원은 음주로 잠을 구한다. 어떤 국가는 현장 프로그램을 도입했지만 일선에서는 체크리스트만 남는다고 체념한다. 관찰지 네 번째 열에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사람”을 적게 했을 때 그가 한참을 멈춰 있었다는 사실은, 제도보다 앞서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조용히 말해준다. 보고서 2쪽의 ‘강해야 한다’ 문화와 지원제도 회피, 3쪽의 현장 프로그램에 대한 냉소가 그 맥락을 보완한다.
또 다른 고통은 집 밖에서 찾아왔다. 수용자들의 조직망은 담장을 넘어 있었다. 거절이 모욕으로 번역되는 세계에서, 어떤 요구를 거부하는 일은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협박으로 이어지곤 했다. 한밤중 낯선 차가 집 앞에 서 있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의 회로는 다시 켜졌다. 관찰지에는 “귀가 전환의식 실패”라는 메모가 반복되었다. 현관에서 아이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경비 모드가 해제되어야 하는데, 그는 그 기능을 잃었다. 외부 위협과 가족을 겨냥한 협박 사례는 미국 남동부의 지역 보도부터 교정 전문 매체까지 넓게 기록돼 있다. 이 서술은 보고서 1쪽과 2쪽의 사례 요약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변하영은 이 장면마다 작은 절차를 만들었다. 첫째, 교도소를 빠져나와 차 문을 닫는 순간, “현장명-사건명-나의 역할”을 소리 내어 15초간 정의한다. 이는 기억에 경계선을 그리기 위한 마감 문장이다. 둘째, 집 앞 50미터 구간에서는 휴대폰을 꺼두고, 심박과 호흡수를 체크한다. 셋째, 현관 앞에서 눈을 감고 “나는 지금 어느 세계에 들어가는가”를 묻는다. 이 간단한 전환의식은, 뇌가 한 세계에서 다른 세계로 넘어갈 때 필요한 마찰을 만들어준다. “아빠가 들어오면 웃는 얼굴로 들어오는 규칙” 같은 긍정 강요를 만들지 않는다. 대신 “지금의 감정 상태를 숨기지 않고 전달하는 한 문장”을 배운다. “아빠 오늘 조금 무서웠어. 그래서 말수가 적을 거야.” 정직한 신호를 보내면, 다음의 충돌을 줄일 수 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고통은 사실상 ‘무력감’이었다. 관리해야 할 수용자의 수가 늘어나고, 근무자는 줄어드는 구조 속에서, 그는 일의 품질을 스스로 낮춰야 하는 순간을 자주 경험했다. 적은 인원으로 너무 많은 위험을 감당하는 날의 끝에는 모호한 죄책감이 남았다. “오늘도 겨우 버텼다”는 문장이 반복되면 자존감은 업무성과와 상관없이 침식된다. 몇몇 지역에서는 교도관 부족을 군 인력으로 메우는 상황까지 벌어졌고, 현장 퇴직률이 치솟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 역시 그 개인의 게으름이 아니라 구조적 악화의 결과로, 보고서 2쪽에 인력난과 초과근무의 수치로 제시되어 있다.
이 장에서 변하영은 어조를 바꾸었다. 더 따뜻하기보다는 더 분명하게, 때로는 차갑도록 명료하게. 그는 관찰지의 마지막 칸에 “경계선 선언문”을 쓰게 했다. “나는 폭력을 두려워하지만, 폭력의 결과로 나의 가치를 규정하지 않는다.” “나는 통제를 잃을까 불안하지만, 불안을 줄이기 위해 내가 줄 수 있는 제어를 행사한다. 수면, 영양, 호흡, 기록.” “나는 동료의 죽음을 애도할 권리가 있으며, 그 애도를 연기하지 않겠다.” 선언문은 웅변이 아니었다. 근무 중 10초 틈에서 속으로 되뇌는 최소한의 나침반이었다.
그다음 세션에서 그는 시간표를 다시 짰다. 심야 근무 전 4시간의 수면 확보를 절대 규칙으로 두고, 카페인은 근무 시작 100분 전 마지막 섭취, 근무 종료 뒤 카페인 금지, 햇빛 노출 15분, 짧은 유산소 운동 8분. 표면적으로는 지극히 평범한 위생 규칙들이지만, 이들은 “상시 전투모드”에 붙은 스위치를 아주 조금씩 눌러 끄는 버튼들이었다. 변하영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물었다. “지금 여기에서 당신이 바꿀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는 잠시 침묵했다. “퇴근 후 15분 산책, 그리고 집에 들어갈 때 말 한마디.”
줄어드는 근무인력과 늘어나는 사건, 불완전한 제도와 노조의 갈등, 담장 안팎의 감시와 여론의 스트레스, 그리고 법적 위험의 그림자. 이 난해한 교집합 속에서 교도관은 종종 의심과 체념 사이를 왕복한다. 한국에서는 한 해에 수백 건의 고소가 제기되고 천여 명 넘는 직원이 피소되는 해가 있었다. 대부분 각하나 무혐의로 끝나더라도, 조사받는 기간의 잠은 검은 도화지처럼 찢겨나간다. 이 수치는 보고서 3쪽에 연도·인원과 함께 기록되어 있다. 변하영은 그 수치를 들먹이지 않았다. 대신 말없이 관찰지의 한 줄을 가리켰다. “오늘, 나는 나를 방어하기 위해 무엇을 기록했는가.” 그는 근무일지와 별도로 개인 기록을 시작했다. 상사의 구두 지시, 현장 상황의 타임스탬프, 사용한 말의 정확한 문구. 기록은 스스로를 의심하는 시간을 줄여주고, 나중의 법적 분쟁에서 기억을 보호하는 방패가 된다.
변하영이 가장 공들인 대목은 ‘의미의 재배치’였다. 이들의 직업은 세상에서 가장 나쁜 순간들을 가까이에서 목격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나쁜 순간을 관리하는 사람’과 ‘나쁜 사람이 되는 것’은 다르다. 그는 이 구분이 흐릿해질 때 마음이 어떻게 붕괴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관찰지에는 매일 마지막 질문이 하나 있다. “오늘 내가 한 작은 선의는 무엇이었는가.” 수용자의 격리 요청을 빠르게 처리해 자해를 막은 순간, 동료의 장난이 선을 넘는 것을 조용히 막은 순간, 평소 소리치던 상황에서 목소리를 낮춘 순간. 그가 적은 작은 문장들이 쌓이자, 그의 직업 정체성은 다시 미세한 균열을 봉합하기 시작했다. 선의는 거창한 영웅담이 아니라, 통제 가능한 반경 안에서 회복된 자기효능감의 언어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동료였다. 동료의 자살 소식이 조직 전체를 무너뜨리는 방식은 치명적이다. 그 충격은 파문처럼 번지고, 남아 있는 자들은 설명할 수 없는 죄책감과 분노를 동시에 느낀다. 누군가는 “그때 단체채팅방에 뭐라도 남겼어야 했나”를 곱씹고, 누군가는 “나도 그만둘까”를 중얼거린다. 변하영은 애도를 공동의 기술로 만들었다. 근무 종료 후 20분, 휴게실 불을 낮추고, 한 사람씩 돌아가며 고인을 기억하는 문장을 말한다. “그 사람의 웃음은 이랬다.” “우리는 이런 장면에서 함께 버텼다.” 애도는 사적인 일이지만, 이 조직에서는 공적 기술로 훈련되어야 한다. 보고서 1쪽과 4쪽의 자살·애도 관련 서술은 이 장면이 윤리적 과장이 아니라 긴급한 필요임을 확인시켜 준다.
그날 상담의 끝에서 그는 의자에 깊이 앉아 한참을 눈을 감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서해의 바람이 철망을 스치는 소리를 냈다. 변하영은 관찰지를 접어 그에게 건넸다. 위에 작은 메모가 얹혀 있었다. “오늘의 승리는 작아도 된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도 보안문은 닫히고, 형광등은 깜박일 것이다. 그러나 오늘 그는 알았다. 자신의 세계를 조금 다르게 통과하는 기술이 생겼다는 것을. 그것이 이 장의 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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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경보의 바다에서 떠다니는 사람들
서해시의 야간 대기는 마음이 고장 나기 직전의 전원공급장치처럼 가느다란 떨림을 품고 있었다. 항만에서 올라오는 소금기, 신도시의 공사현장에서 날아온 석분, 오래된 주택가의 보일러 연기와 삼겹살집 후드에서 새어나온 기름 냄새까지, 모든 분자가 서로의 각서를 읽지 않고 제멋대로 떠다니는 가운데, 서해소방서 지령실의 모니터 한 귀퉁이에서 사라진 컵라면 김이 경보음의 전주곡처럼 피어올랐다. 스피커는 예의 그 목소리, 인간이면서 동시에 장치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관내 아파트 17동 1303호, 주방 화재 의심. 출동대기 2, 구조대 1, 구급 1. 그리고 누군가의 손가락이 버튼을 눌렀다. 문이 열리고, 장비칸의 금속이 달빛을 흘렸다. 장화와 장갑, SCBA 실린더의 밸브가 열리는 소리와 함께 대원들의 심장은 서로 다른 BPM으로 뛰었다. 그들이 몸을 실은 펌프차는 비상등의 주황색 블링커가 도로 포토트랜지스터처럼 도시의 표정을 감지하도록 만들며, 저 멀리 교도소 방향의 흰 조명과 항만 크레인의 붉은 램프를 한 줄에 꿰어 달리는 실험용 전류처럼 미끄러졌다.
라디오에서는 숫자와 단어가 섞여 입자처럼 떨어졌다. 17-3, 수신. 17-3, 현장 접근 중. 그리고 누군가의 셔츠 주머니에서 울리는 또 다른 조그만 세계, 스마트폰의 알림이 이 세계의 알림과 경쟁하려 했다가 곧 포기했다. 태양열처럼 축적된 하루의 피로는, 냉장고 자석 아래 눌린 영수증처럼 언제든 떨어질 준비가 되어 있었고, 대원들의 머릿속에서는 각자의 여권 사진 같은 표정들이 겹쳐졌다. 승진 심사표의 빈칸, 임대차계약 만료일, 아이가 보낸 동영상 속 학교 운동장의 파도 같은 함성, 그리고 말 못한 성적 불안과 비교의 그림자. 그 그림자가 불길의 형상을 본뜬다 하여도 이상하지 않은 밤이었다.
현장 진입 직전, 신임 대원의 귀 뒤쪽이 미세하게 젖었다. 마스크를 씌우는 손이 잠깐 멈췄다. 한 달 전에도 그랬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경보음이 연달아 세 번 울린 밤마다 그랬다. 몸은 화재를 준비하며, 마음은 설명하기 어려운 다른 종류의 화재를 준비했다. 낯선 욕구는 때로 스스로를 위협으로 오인하고, 위협은 다시 욕구의 얼굴을 쓰고 돌아왔다. 불안을 풀어놓는 데 실패한 에너지는 방향을 잃고 제일 가까운 필드로 이동한다. 비교, 경쟁, 승인 욕구, 타인의 눈. 그 필드는 주로 야간이었다. 부재와 공백이 소리를 증폭시키는 법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욕구는 불안으로 변형되고, 불안은 발목에 감긴 호스처럼 체력을 소모시켰다. 호스는 흐름을 위해 존재하지만, 가끔은 흐름 자체가 족쇄가 된다.
문이 열리자, 조리된 기름 냄새와 오래된 화구의 탄내가 한꺼번에 튀어 올랐다. 스프링클러는 늦게 울었고, 사람들은 너무 일찍 달아났다. 아파트 복도는 주말 아침처럼 조용했으나, 주방 문턱을 넘자 금속 후라이팬의 손잡이가 나무 젓가락의 슬픈 최후처럼 까맣게 변해 있었다. 대원들은 정해진 정렬로 움직였다. 펌프 압력 8, 라인 투입, 차단기 확인, 환기 경로 설정. 열화상 카메라의 사각 프레임 안에서 잔열이 미풍 같은 움직임으로 흔들렸고, 신임 대원은 그 흔들림을 잠깐 자신의 심장 위로 가져가 보았다. 돌아오는 길에 그는 장갑을 벗고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손에 남은 마늘과 간장의 잔향이 환상처럼 그를 따라왔다.
서해소방서 2층 상담실의 형광등은 깊은 수면과 얕은 호흡 사이의 회색 구역 같은 빛을 냈다. 새벽이었고, 변하영은 대원들의 젖은 머리카락 너머로 흩어지는 물방울을 세었다. 그녀는 종종 숫자로 시작했다. 숫자는 사람을 안심시킨다. 경보음은 늘 단정한 숫자로 온다. 시간, 호수, 동수, 층수, 압력, 수치. 숫자는 무정하지만, 무정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다. 그녀가 꺼낸 것은 정서관찰지였다. 선이 많은 종이. 선이 있다는 건 이 페이지에선 흘러내릴 수 없다는 뜻. 꽤 괜찮은 약속이었다.
그녀는 먼저 오늘의 경보를 복기한다. 경보가 울렸다. 몸이 반응했다. 마음이 따라갔다. 아니, 어떤 마음은 먼저 뛰어갔다. 감각, 생각, 충동, 행동. 이 네 개의 칸을 오늘의 시간순으로 적자. 틈이 생기면 그 틈을 적자. 틈이란 건, 예기치 않은 고요, 설명할 수 없는데 명확한 느낌, 이름 없는 초조 같은 것이다. 신임 대원이 조심스럽게 적는다. 라디오 첫 음. 목덜미의 열감. 오븐 앞에서 본 빨간 선. 장갑을 벗을 때의 기름 냄새. 변하영은 그 옆 칸에 몇 가지 단어를 제시한다. 동조, 경쟁, 인정, 혐오, 수치, 소속, 고립. 단어 중 하나를 고르면, 그 단어에 몸의 감각을 붙여보자고 했다. 감각은 거짓말을 잘 하지 못한다. 심장이 빨라졌는가, 목이 말랐는가, 혀끝이 얼얼해졌는가, 손가락이 저렸는가. 대원들은 감각의 지도 위에 단어를 꽂았다. 그 다음이 중요했다. 선택이라는 칸. 경보음이 울리면,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한다. 뛰기, 확인하기, 물기, 말하기, 침묵하기. 오늘 우리는 무엇을 선택했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해준 작은 질서는 무엇이었는가.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늘 거대한 혼돈과 싸운다고 배우지만, 혼돈의 대부분은 아주 작은 단정함의 붕괴에서 시작한다. 사물함에 들어가야 할 것이 들어가지 않은 하루, 침상에 접혀야 할 담요가 접히지 않은 교대, 장비 점검 체크리스트의 빈칸 하나, 카라비너의 반쯤 열린 게이트, 이런 것들이 다리미판에서 조금씩 솟는 주름처럼, 결국 당신의 목을 조인다. 큰 의미를 찾기 위해 작은 질서를 소홀히 하는 순간, 의미는 우리의 뒷주머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이 도시는 언제나 큰 의미를 요구하지만, 당신의 정신은 작은 질서로 지켜진다. 오늘은 사물함부터 다시 배열하자. 장비와 기록, 운동과 수면, 식사와 관계. 정서관찰지가 그 사이의 교통정리를 맡는다.
대기실에서는 텔레비전이 소리를 꺼진 채로 재난 다큐멘터리를 틀고 있었다. 자막만 나왔다. 그녀는 리모컨을 집어 들고 화면을 껐다. 화면을 끄자, 대원들 사이로 담요에서 막 꺼낸 몸 같은 고요가 흘렀다. 그녀는 신임에게 물었다. 당신은 언제 가장 인정받는다고 느끼는가. 그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신 어젯밤 헬스장에서 찍힌 자신의 거울 셀피가 잠깐 스쳐 갔다. 팔 둘레 수치와 좋아요 숫자가 교차하면서 분절된 박수를 쳤다. 그녀는 말했다. 인정이 욕구로만 남을 때, 불안은 복권처럼 자주 찾아온다. 불안은 시스템의 경보다. 문제는 이 경보가 종종 잘못된 화재감지기처럼 과민하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경보를 분류해야 한다. 실제 화재, 오작동, 식사시간의 냄새, 누군가의 부주의, 그리고 내 안의 요구가 만든 신호. 정서관찰지의 네 번째 칸에 경보 분류를 쓰자. 적을수록 좋다. 명료할수록 좋다.
중년의 펌프차 운전원은 말수가 적었다. 그에게는 다른 종류의 경보가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 병원 복도에서 울리던 저음의 기계음과 오늘의 경보음이 이상하게도 같은 구간을 건드렸다. 그는 그를 괴롭히는 그림자를 폭력으로 밀어내본 적이 있었다. 말 없이 떠나거나, 말 없이 남거나, 아무 말 없이 무거운 것을 더 얹어 보거나. 효과가 있었는가. 잠깐의 침묵 뒤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에게 아주 구체적인 제안을 했다. 오늘부터 12분 복구 루틴을 도입하자. 경보가 끝난 후 12분 동안만, 장비를 닦고, 물을 마시고, 심박을 느리게 하고, 오늘의 정서관찰지를 한 줄만 쓰자. 한 줄이면 충분하다. 열 줄을 못 쓸 것 같으면, 한 줄이 훨씬 낫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운동을 하자. 기록을 올리지 않는 운동. 인증사진이 없는 운동.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설계된 근육 말고, 펌프 압력과 계단의 높이가 요구하는 근육을 키우자. 이런 제안은 엄격했고, 동시에 따뜻했다. 그 조합이야말로, 그가 지금껏 자신에게 허락하지 않았던 방식이었다.
대원들의 웃음은 가끔 교도소의 벽을 넘는 전파처럼 묘하게 먼 곳을 건드렸다. 서해교정본부의 새벽 조명 아래서도 경보는 울리고, 거기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경보와 함께 먹고 자고 싸웠다. 그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의 권리와 안전, 규정과 모멸, 법과 야유가 서로 엉켜 있었다. 소방서와 교정본부 사이에는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다리가 있었다. 경보는 종종 둘을 연결한다. 오늘 밤처럼. 교정본부 외곽에서 작은 화재가 신고되었고, 구급대가 먼저 도착했다. 철문 너머의 시선들은 늘 그렇듯 여러 의미를 한꺼번에 품고 있었다. 적대와 호기심, 구원 요청과 조롱의 조합. 대원들의 시선은 가능한 한 훈련된 것으로 답했다. 정서관찰지의 한 칸에는 이런 날의 눈빛도 적혔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철문 앞에서 느낀 어제의 모욕과 오늘의 연민이 한꺼번에 올라왔다. 나는 그 둘을 동시에 들고 있기로 결정했다. 들고 있으려면 자세가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 허리가 무너지면 감정은 쏟아진다. 그러니 허리부터 세우자.
오전이 되고, 도시의 환기가 시작되자, 대원들의 말도 조금 가벼워졌다. 그러나 또 다른 종류의 경보가 도착했다. 지하주차장, 차량 화재 의심. 환기구 바람이 수학 문제의 오답처럼 제멋대로 구불거렸다. 현장에서는 의외로 빈 차였고, 누군가가 버린 담배꽁초가 플라스틱 바닥재를 녹이며 만든 흉터가 검붉다. 한참을 정리하고 올라온 뒤, 신임 대원은 상담실 문턱에서 망설였다. 변하영은 그 망설임을 마치 오래된 서랍의 걸림 같은 것으로 인식했다. 손잡이를 한 번 더 잡아당기면 열리는 종류. 그는 앉아, 불쑥 말을 꺼냈다. 선배들 사이에서, 나는 내 자리를 못 찾겠다. 누군가는 아재개그와 욕설로 공간을 점유하고, 누군가는 침묵으로 점유한다. 나는 어느 쪽도 능숙하지 않다. 그 사이에서 나는 나를 증명하려고 더 위험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조직은 종종 숨은 통과의례를 만든다. 위험과 우스갯소리, 성적 농담과 과잉 근무가 서로 묶이면, 그건 일종의 문턱이 된다. 문턱은 대체로 남성적 경쟁의 포맷을 따른다. 당신은 통과하고 싶지만, 동시에 문 자체를 바꾸고 싶다. 두 마음이 싸우면, 몸이 다친다. 그래서 우리는 문턱 대신 의식을 만들자. 당신만의 출동 전 의식, 귀환 후 의식, 관계를 확인하는 의식. 의식은 문턱을 대체할 수 있다. 통과를 위해 자신을 해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더 낫다.
그녀는 작은 상자를 꺼냈다. 안에는 흰 카드는 아니고, 사포처럼 표면이 약간 거친 회색 카드들이 들어 있었다. 각 카드에는 질문 하나씩. 당신이 오늘 피하고 싶은 대화는 무엇인가. 그 대화를 피하면 무엇이 커지는가. 당신의 몸에서 오늘 가장 큰 신호는 어디서 오는가. 그 신호를 무시했을 때 당신은 어떤 실수를 저지르는가. 카드는 단정했고, 단정하기 때문에 대담했다. 대원들은 카드 하나씩을 골라 읽었다. 읽는 동안, 그들의 어깨는 약간 낮아졌다. 의외로 질문은 사람을 공격하지 않는다. 질문은 바닥을 만든다. 거기서부터 서 있을 수 있다.
정오 무렵, 휴게실에서는 선택한 외상과 선택받은 외상이 서로 다른 지도를 그린다는 얘기가 나왔다. 누군가는 불길 속으로 반복해서 들어가며 자기 확신을 얻고, 누군가는 그 반복이 자기 상실로 이어진다. 어떤 날에는 욕망이, 다른 날에는 두려움이 운전대를 잡는다. 욕망의 엔진이 꺼져가는 날, 우리는 종종 두려움을 엑셀로 착각한다. 결과는 같다. 속도가 붙는다. 그러나 방향은 다르다. 그래서 변하영은 방향을 적자고 했다. 오늘의 방향. 나는 무엇을 향해 갔는가. 확실히 쓰기 어렵다면, 적어도 무엇을 등지고 있었는가를 쓰자. 등진 것의 목록을 보면, 당신이 사실은 어디로 가고 싶은지 드러날 때가 있다.
오후 내내 자잘한 출동이 이어졌다. 오작동 감지기, 쓰레기 더미의 연기, 허위신고, 주차장 고양이 구조. 이런 날이 가장 사람을 지치게 한다. 큰 불보다 작은 불이 더 무섭다고 느껴지는 이유는, 작은 불이 우리의 신경을 오래 잡아먹기 때문이다. 의미의 도메인이 계속 쪼개지면, 인간은 유지보수 모드로만 존재하게 된다. 유지보수 모드는 생존에는 좋지만, 자부심과 소속감에는 안 좋다. 그래서 그녀는 저녁 브리핑 때 정서관찰지에 새로운 칸 하나를 더 만들었다. 기여와 자랑. 오늘 내가 기여한 것 한 가지. 오늘 내가 자랑하고 싶은 것 한 가지. 자랑은 허영과 다르다. 허영은 타인의 시선을 필요로 하지만, 자랑은 자신의 표정만 있으면 된다. 오늘의 자랑을 적다가, 대원들 중 둘은 뜻밖에도 자신의 실수를 적었다. 실수를 인정한 것이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런 종류의 자랑은 조직을 튼튼하게 만든다. 문턱을 의식으로 바꾸는 일의 또 다른 방식이었다.
해질녘, 신임 대원은 혼자 장비창고에 내려가 방화복 소매를 정리했다. 단단한 섬유가 그의 손목을 감싸며 하루의 여러 신호를 흡수했다. 복도 끝에서 변하영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녀는 묻지 않고 옆에 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그가 먼저 말했다. 저는 제 마음이 자꾸 어딘가로 새어 나가는 느낌이 듭니다. 경보가 울리면 제 마음은 먼저 미래로 달려갑니다. 실패의 미래, 비교의 미래, 조롱의 미래. 그래서 몸이 뒤늦게 따라가요. 따라가다 보면 몸이 다치거나, 누군가가 다칩니다.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먼저 달려가면, 몸은 늘 과속 위반 딱지를 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마음을 세관에 세워야 한다. 경보가 울릴 때, 마음이 들고 나가는 물건을 5초만 검사하자. 감각 하나, 생각 하나, 충동 하나. 이 세 가지를 5초 동안 들여다보고, 그 다음에 뛰자. 5초는 길지 않다. 그러나 5초는 질서를 만든다. 질서는 의미를 지탱하고, 의미는 당신을 지킨다.
밤이 다시 깊어질 때쯤, 도시의 소음은 하루 동안 낸 모든 영수증을 서랍에 넣는 사람처럼 느슨해졌다. 대원들 중 몇은 침상에 누워 눈을 감았고, 몇은 조용히 라면을 끓였으며, 몇은 오늘의 정서관찰지를 사진으로 남기지 않고 접어 사물함에 넣었다. 좋아요 버튼을 누를 수 없는 종이는 이상하게도 더 오래 남는다. 변하영은 창가에 서서 주차장의 조명을 보았다. 그 빛은 마치 경보가 잠시 쉬는 곳 같았다. 경보는 쉬지 않지만, 사람은 쉬어야 한다. 그녀는 그것을 잊지 않도록 메모했다. 내일 아침 브리핑의 첫 문장. 우리는 불을 끄는 사람들이지만, 그 전에 불을 다루는 사람들이다. 우리 안의 불, 관계의 불, 의미의 불. 이 불들은 모두 같은 산소를 쓴다. 산소가 부족하면 무엇이 먼저 꺼질지 우리는 선택해야 한다. 그 선택이 우리의 삶이 된다.
멀리서 또 하나의 경보음이 들렸다. 대원들은 일어나 장비를 챙겼다. 이 도시는 늘 무언가가 타오르고, 늘 무언가가 식는다. 출동문이 다시 열리자, 차고의 공기가 마치 바다처럼 밀려나갔다 돌아왔다. 펌프차가 어둠 속으로 미끄러지는 순간, 변하영은 정서관찰지의 맨 마지막 칸, 오늘의 문장을 적었다. 불은 언제나 이유 없이 오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반응도 이유 없이 가지 않는다. 이유를 본다는 건, 타인을 탓할 시간을 내 안의 질서를 세우는 시간으로 바꾸는 일이다. 그녀의 문장은 간단했고, 간단하기 때문에 단단했다. 밤은 다시 시작되었다. 도시의 수많은 작은 질서가 그 밤을 붙들었다. 경보는 계속 울렸고, 그 사이를 지나가는 인간들은 가능하면 부드럽게, 그러나 필요할 때는 단호하게, 서로의 숨을 지켜냈다. 그렇게 하루가, 그리고 다음 하루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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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철문이 닫히던 오후
사건을 중심에 놓고 한 사람의 내면과 제도의 층위를 동시에 해부해보면, 복잡한 조직의 맥이 뚜렷해진다. 그날 서해교정본부 E동에서 일어난 일은 통계로 환원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지만, 한 명의 교도관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었고, 조직은 그가 남긴 메모에서 새로운 규범을 찾았다. 변하영은 이 사건을 “한 번 닫힌 철문”이라는 표제로 기록했다. 문이 닫히는 순간, 개인의 반사신경·팀의 훈련·제도의 철학이 동시에 시험대에 오른다.
시간은 오후 3시 17분, 회색 복도의 온도는 22도, 습도 56퍼센트. 디지털 패널의 숫자처럼 단정한 공기가 흐르는 가운데, 교도관 정민호는 의무실 이송을 위해 수용자 4572를 면담실로 데려가던 참이었다. 4572는 지난달부터 지속적으로 소화기 통증과 불면을 호소했고, 같은 시기 민원·청원·진정으로 이어지는 서류의 흐름을 만들었다. 서류는 그를 ‘권리를 요구하는 시민’으로, 경비일지의 문장은 그를 ‘위험신호 이력 보유자’로 표상했다. 두 문장은 사실이고, 둘을 동시에 붙들고 있어야만 이 직무는 안전해진다.
면담실 문턱에 들어서자 기류가 바뀌었다. 정민호는 바닥의 미세한 가루를 보고 걸음을 늦췄다. 칼슘 분진처럼 보였지만, 경험은 이 가루가 잘 갈린 플라스틱의 부산물일 가능성을 알려준다. 면담실 테이블 아래, 의자 발통과 바닥 사이의 좁은 공간에서 흔히 발견되는 그것. 누군가 플라스틱 숟가락을 갈아 만든 즉석 칼날은 길이 3센티미터, 손에 감추면 한 번의 놀람으로도 치명상을 낼 수 있다. 규정상 그는 즉시 추가 인원을 요청하고 재수색을 해야 했다. 그러나 같은 규정은 면담 대기 중인 수용자에 대한 과도한 신체접촉을 금지하며, 최근 개정된 지침은 면담실 내부에서는 분사기 사용을 최대한 지양하라고 명시한다. 서로를 제압하는 문장들 사이에서, 그는 판단을 선택해야 했다.
결정적 사건은 그다음 한 동작에서 일어났다. 의자에 앉기를 거부하던 4572가 갑자기 상체를 낮추며 테이블 아래로 팔을 넣었고, 정민호가 본 것은 번쩍임이 아니라, 종이처럼 얇아진 플라스틱의 반사였다. 그는 즉각적으로 손목을 고정하는 전환을 시도했다. 한 손으로 팔꿈치를 지렛대 삼고, 다른 손으로 손목의 회전을 차단한다. 그 동작은 훈련된 것 그대로였지만, 그의 손에 잡힌 것은 손목이 아니라 셔츠 소매의 끝이었다. 미세한 빗나감이 생겼고, 빗나감은 소리의 형태로 실체화되었다. “과도한 접촉”이라는 외침, 면담실 구석의 카메라 사각지대, 문 밖에서 대기하던 민원 담당자의 발걸음, 그리고 4572의 입에서 동시에 쏟아진 말. “성추행이야.”
철문은 자동으로 닫혔고, 라디오에는 질서 정연한 절차가 흘렀다. 구호 요청 코드, 보안 강화 단계, 의무실 대기. 그러나 정민호의 귀에는 다른 소리도 들렸다. 스마트폰 진동처럼 머릿속에서 울리는 미래의 소리. 정직(停職) 통보, 언론의 헤드라인, 알고리즘이 부풀린 댓글의 합창, 가족 카톡방의 느린 말줄임표. 한 개의 단어가 조직의 절차를 뚫고 들어오면, 개인은 미래의 편집본 속에서 현재를 운영해야 한다. 그는 심호흡을 두 번, 눈을 한 번 감고 떴다. 그리고 문 너머의 동료에게 “카메라 라인 안에서 다시”라고 말했다. 면담실 테이블 쪽으로 15센티미터 몸을 뺐다. 카메라와 자신의 몸을 일치시키는 15센티미터는 직감이 아니라 연습의 산물이었다.
두 번째 동작은 교과서에 가깝게 들어맞았다. 손목 고정, 회전 차단, 의자 쪽으로의 압력 이행. 그 사이 4572의 손에서 떨어진 것은 날이 아니라, 날 없이도 상처를 남기기에 충분한 문장들이었다. “당신, 나 만졌어. 난 다 기록해.” 이 말은 두 겹으로 작동한다. 첫째, 실제 상황에서의 심리적 제압. 둘째, 사후 절차에서의 법적 압박. 사건은 2분 40초 만에 정리되었고, 4572는 의무실로 이송되었다. 공식 보고서는 단정했다. “위험한 사물 은닉 시도, 제압, 무사 이송.” 그러나 비공식 서사는 다르게 흘렀다. 내부 게시판엔 절차의 미세한 흠집을 문제 삼는 글들이, 외부 커뮤니티에는 텍스트 조각들이, 그리고 그 텍스트를 가족이 볼 수도 있다는 사실이, 정민호의 밤을 파고들었다.
그가 상담실로 들어온 것은 사건 이틀 뒤였다. 변하영은 책상 위에 정서관찰지를 펼쳤다. 정보의 조각이 아니라 경험의 구조를 기록하는 종이. 그녀는 먼저 시간대를 나눴다. 직전(문턱), 사건(충돌), 직후(정리), 사후(파장). 각 구간에 네 칸씩. 감각, 생각, 충동, 행동. 숫자 대신 문장을 써도 좋고, 문장 대신 단어를 써도 괜찮다. 그는 망설임 없이 첫 칸을 채웠다. 감각: 바닥의 가루, 심박 110 전후, 손끝의 온기 감소. 생각: 사각지대, 지침 개정, 보도가 될지도 모르는 그림. 충동: 빨리 끝내고 싶다, 내 이름을 지키고 싶다. 행동: 카메라 라인 맞추기, 재수색, 동료 호출.
다음은 해석의 층위였다. 변하영은 그에게 ‘과업의 분리’를 제안했다. 당신이 당장 통제할 수 있는 과업, 영향은 주되 통제는 못 하는 과업, 그 어떤 영향도 줄 수 없는 과업. 통제 가능한 과업에는 동작의 정확도와 카메라 라인 확보, 팀 호출 타이밍이 들어간다. 영향 가능한 과업에는 보고서의 서술 방식과 동료들의 진술 정합성이 있다. 영향 불가능한 과업에는 외부 여론과 제목 뽑기가 있다. 과업을 구획하면, 불안은 방향을 잃고 당신의 몸으로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입술은 굳어 있었다. “문제는요, 제가 옳았다는 걸 제가 알아도, 누군가가 가족에게 전화를 걸면 그 순간 모든 게 틀어집니다.”
그 문장에 그녀는 멈췄다. 그리고 다른 칸 하나를 꺼냈다. ‘가치의 근거.’ 사건 직후의 몸은 자주 수치와 분노 사이를 왕복한다. 두 감정은 에너지를 주지만, 판단을 흐린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사이에 값을 하나 넣는다. 당신이 이 일을 하는 이유의 문장. 그는 쉽게 떠올리지 못했다. 대신 동료의 얼굴이 몇 개 떠올랐다. 야간 순찰 중 샌드위치를 반으로 나누어 건네던 사람, 아이 생일이라 알람을 두 개 맞추던 사람, 욕설을 들은 뒤에도 규정 문장을 반복하던 사람. 그는 이 얼굴들을 한 문장으로 묶었다. “우리는 감정보다 절차로 서로를 지킨다.” 변하영은 그 문장을 정서관찰지 아래에 따로 적게 했다. 값이 하나 생기면, 감정은 과열되지 않는다.
사건의 제도적 층위를 짚는 일도 필요했다. 왜 사각지대가 생겼는가, 왜 지침은 서로 상충하는가, 왜 면담실이라는 공간은 카메라 라인과 인권 보호 사이에서 애매한가. 그녀는 사건 기록과 바닥 도면을 함께 펼쳐놓고, 세 가지 작은 변경을 제안했다. 첫째, 면담실 테이블 하부에 투명 차폐판을 추가해 은닉·접근 시간을 0.5초라도 늘리기. 둘째, 카메라 라인을 바닥 테이프로 시각화해, 발 위치와 영상 확보를 동시에 훈련하기. 셋째, ‘언어적 지배’ 시나리오를 별도로 훈련하여, “성추행”·“차별” 같은 고강도 단어가 투입될 때 신체 동작이 무너지지 않도록 상호 점검 루틴을 만들기. 그녀의 제안은 크지 않았지만, 교도관들 사이에서 “0.5초의 벽”이라고 불리며 빠르게 확산됐다. 제도는 종종 거대한 선언으로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현장은 밀리미터와 초 단위의 변화로 안전해진다.
정민호의 밤은 여전히 깊었다. 인사위원회 소환 통지가 오기 전까지의 공백은, 불안이 가장 넓게 번지는 시간대였다. 변하영은 그 공백을 관리하기 위해 ‘12·5·3’ 루틴을 처방했다. 사건 기록을 12줄로 요약, 하루 다섯 번 30초 호흡, 잠자리 들기 전 3문장 감정 정리. 그는 처음엔 형식적으로 적었다. “분노 7, 수치 6, 피로 8.” 사흘째가 되자 문장이 길어졌다. “수치는 내 이름을, 분노는 내 직업을 공격한다. 둘 다 내 아이의 얼굴을 가린다.” 일주일째에는 문장이 바뀌었다. “분노는 경보, 수치는 경계. 둘이 울릴 때 나는 절차로 답한다.” 그의 메모는 동료들에게 공유되었고, 나중에 교육자료의 서두로 들어갔다.
사건은 예상보다 빨리 정리되었다. 면담실 영상은 그의 15센티미터 이동과 두 번째 동작의 정확도를 입증했다. 4572는 은닉물 소지로 징계를 받았고, 성추행 주장은 기각되었다. 그러나 핵심은 판정이 아니었다. 판정의 늦고 빠름은 마음의 상처 치료와 거의 무관하다. 상처는 통제 불가능한 것에 자신의 가치를 걸었을 때 깊어진다. 그날 이후 정민호는 근무 전 개인 의식을 만들었다. 사물함을 열어 장갑의 재봉선을 한 번 훑고, 카메라 라인을 머릿속으로 밟고, 정서관찰지의 ‘가치 문장’을 조용히 읽는 것. “우리는 감정보다 절차로 서로를 지킨다.” 의식은 문턱을 바꾼다. 예전의 문턱이 ‘통과 여부’로 사람을 걸러냈다면, 새로운 문턱은 ‘준비 여부’로 마음을 세운다.
변하영은 사건의 마지막 단계를 ‘관계’에서 찾았다. 조직은 서로의 판단을 신뢰해야 하고, 그 신뢰는 비상시에만 쓰는 비축자원이 아니다. 평시의 짧은 질문과 간단한 칭찬이 비축량을 채운다. 그녀는 팀 회의에서 한 줄씩 돌아가며 말했다. “오늘 당신이 만든 0.5초는 무엇이었는가.” 펜을 든 사람들이 자신이 만든 작은 벽들을 말했다. 복도의 조도 점검, 열쇠뭉치 정렬, 신고서의 문장 다듬기, 말 한마디의 톤 조절. 이 작은 벽들 덕분에, 다음 철문이 닫힐 때 우리는 더 천천히, 그러나 더 정확하게 움직일 수 있다.
사건이 끝난 뒤, 도시의 다른 쪽에서는 서해소방서의 경보가 울렸다. 같은 시간대에 서로 다른 공공의 직무가 같은 언어를 썼다. 절차, 라인, 0.5초, 팀. 변하영은 그 언어를 하나로 묶었다. 정서관찰지의 마지막 칸, ‘오늘의 문장’ 아래에 두 조직을 잇는 문장을 적었다. “권리는 구호이고, 안전은 구조다. 우리는 두 언어를 번역하며 근무한다.” 그 문장은 E동의 면담실 문에, 그리고 소방서 상담실의 화이트보드에 나란히 붙었다.
이 장을 마무리하며 우리는 한 사건에서 세 겹의 교훈을 뽑아낼 수 있다. 첫째, 개인의 수준에서는 감정·생각·충동·행동을 시간대별로 나누는 훈련이 위기 순간의 15센티미터를 만들어낸다. 둘째, 팀의 수준에서는 시야와 카메라 라인을 일치시키는 시각적·신체적 의식이 오해의 여지를 줄인다. 셋째, 제도의 수준에서는 상충하는 지침을 현장의 언어로 분해·재조합하여 작은 설계를 바꾸는 것이 가장 빠르게 안전을 개선한다. 모든 층위에서 핵심은 같다. 값 하나, 0.5초 하나, 문장 하나. 거기에서 사람은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는다. 그리고 다음 번 철문이 닫힐 때, 우리는 준비된 자세로 다시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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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소모되지 않는 인간
서해시의 지도는 옅은 안개 속 회로도처럼 보인다. 직선으로 눌러쓴 도로들 사이로 경보음의 파형이 출렁이고, 가로등 아래로는 각자의 사소한 의식이 정류소처럼 서 있다. 서해소방서 대응1팀 숙직실, 낡은 전기주전자 옆 종이컵 두 개, 식판에 남은 흰 밥알 몇 개, 그리고 길게 접혀 바지 주머니에 들어가다 못해 모서리가 해진 종이. 그 종이에는 누군가의 선으로 된 하루가 있다. 날짜, 시간, 감각, 생각, 충동, 행동. 잉크 냄새는 옅지만 문장들은 놀랍도록 또렷하다. 반대편, 서해교정본부 동쪽 채광이 나쁘기로 유명한 복도 끝, 창살 너머 누런 벽지와 균열이 만든 나뭇가지 모양 그림자들 사이에도 같은 종이가 있다. 종이는 성질이 없다. 그러나 붙잡는 사람의 손에 따라 다른 운명을 갖는다. 어떤 손은 종이를 핑계로 삼고, 어떤 손은 종이로 물건을 만든다. 이 도시는 이제 종이로 시간을 만든다.
아침 다섯 시 사십삼 분, 소방차의 엔진열이 아직 점화되기 전, 박도윤은 침대 끝에서 양말을 신다가 멈추었다. 핸드폰 화면 위에 떠 있는 밤새의 뉴스, 얼굴 없는 피드들의 잔상, 죄책감과 흥분이 혼합해 만든 뜨거운 피부. 그는 화면을 바닥에 뒤집어놓고 종이를 펼쳤다. 감각: 목 뒤가 뻣뻣함, 손바닥 따가움. 생각: 또다시 공허를 자극하려는 충동. 충동: 화면을 켜고 손을 움직이고 싶다. 행동: 주전자에 물 올리고, 호흡 삼십 초. 종이 위의 네 칸이 아침의 물집을 터뜨리듯 그의 어제를 비워낸다. 그는 스스로 만든 문장으로 돌아온다. “지금 정렬할 수 있는 것은 내 물건과 내 몸, 그리고 내 문장.” 로커 문을 열어 장갑의 재봉선을 손톱으로 한 번 훑고, 호스를 감으며 무릎을 낮추고, 수첩 맨 뒷장에 ‘의미’라는 두 글자를 써 넣는다. 의미는 써 넣기 전까지는 질서의 장난감 같다. 일단 쓰고 나면, 손목이 무거워지고 허리가 펴진다.
같은 시각, 수용자 4572는 눅눅한 매트리스에 등을 붙이고 천장을 본다. 천장 페인트는 해마다 벗겨지는데, 아무도 그 조각의 떨어지는 속도를 재보려 하지 않는다. 그는 대신 자신의 속도를 잰다. 감각: 혀끝이 달다, 침이 많이 고인다, 손가락 끝이 근질근질. 생각: 그 맛, 그 장면, 그 루프. 충동: 병뚜껑을 열고 싶다, 누군가의 체온을 빌리고 싶다. 행동: 얼음 한 조각 잡기, 12줄 요약 쓰기. 그는 사각의 얼음을 잡아 쥔다. 그 감각은 욕망을 욕망 자체가 아닌 메시지로 바꿔놓는다. 도파민이라는 이름을 알 필요는 없고, 시소의 기울기를 이해하면 충분하다. 그가 페이지 아래에 적어둔 말. “기쁨을 늦추면 고통도 늦어진다. 나의 전선은 10분.” 전등빛이 희미하게 흔들리는 동안, 그는 12줄을 빠르게 적는다. “새벽 두 시 반에 깼다. 내 몸은 달렸고, 내 머리는 핑계 목록을 만들었다. 목록을 지웠다. 대신 양치를 두 번 했다. 혀끝의 달음은 내려갔다. 나는 아직 여기 있다.” 종이는 악의 증거가 아니라 생존의 인수인계서가 된다.
도시는 두 사람만으로 구성되어 있지 않다. 새로 전보 온 구급대원 서지후는 복도 끝 자동판매기 앞에서 망설이다가, 종이의 한 칸을 채운다. 감각: 위장이 빈 소리를 내고 있다. 생각: 카페인으로 해결하자. 충동: 버튼을 눌러 단 음료를 뽑고 싶다. 행동: 물을 마시고 30초 걷기. 그녀는 자신의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장면을 이해한다. 단 음료는 즉각적인 온기를 주지만, 그 온기는 곧 거짓말을 부른다. 한편, 4572의 맞은편 침상에서 상처 자국이 많은 노인은 기침을 두 번 하더니 종이를 장갑처럼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는다. 면회 직후의 분노와 수치가 겹쳐지며 문장들이 떨릴 때, 그는 페이지 맨 아래 독한 글씨로 쓴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침대 정리와 말 줄이기.” 한쪽에서는 출동 장비가 정렬되고, 다른 쪽에서는 슬리퍼가 칸에 맞게 밀려 들어간다. 세계는 큰 소리를 낼 때도 있지만, 질서의 소리는 대체로 작다. 종이는 그 작은 소리를 받아 적는다.
오전 열한 시를 지나자 경보가 울린다. 장소는 서해시 북부, 오래된 상가건물 3층, 차양은 낡아서 바람만 불어도 덜컹거린다. 팀이 도착하자 공기가 바뀐다. 하얀 연기는 색깔로 말하지 않는다. 연기는 냄새로 말한다. 합성수지와 오래된 전선커버의 불, 식용유가 한 번 끓다 식은 뒤 깜박 켜진 가스불. 사람들은 연기를 본다. 박도윤은 바닥을 본다. 미끌거리는 타일 위 노란 테이프 라인, 카라비너의 위치, 팀원들의 무릎. 그는 무릎을 낮추면서 종이의 한 칸이 머릿속에서 펴지는 것을 느낀다. 감각: 열이 오른다, 손가락 관절이 둔해진다. 생각: 빨리 끝내고 싶다. 충동: 그냥 밀고 들어가서 해결해버리자. 행동: 0.5초 멈춤, 시야-라인 맞춤, 역할 재확인. “내가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다.” 조용한 문장을 속으로 읽고, 그는 오른쪽 벽과의 거리 40센티미터를 유지한다. 호스의 탄성이 반발하고, 위층에서 들려오는 누군가의 울음이 틈을 만든다. 틈은 무모함이 아니라 선택의 공간이다.
같은 시각, 교정본부 공용도서실에서 4572는 재활프로그램 담당자의 질문을 듣는다. “당신의 가장 약한 시간대는 언제죠?” 그는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종이에 적어둔 기록을 펼쳐 본다. 새벽 두 시 반, 점심 직후, 면회 다음 날 아침. 과거의 자신은 스스로를 고발하는 문장을 즐겨썼다. “나는 더럽다, 나는 끝났다.” 지금은 문장이 합리적으로 길어진다. “나는 밤에 강하다. 낮에는 약하다. 낮의 약함은 외부로 확장된다. 통제의 달력은 밤으로 두텁게.” 담당자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간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종이 너머의 사람을 본다.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사용하는 법을 배우는 장면은 조용하지만, 방의 공기를 확연히 바꾼다. 창문 너머 짧은 햇빛, 먼지 입자들, 들숨과 날숨의 길이. 이 모든 것이 문장과 분량과 맞물린다.
오후로 기울며 도시는 서로를 닮아간다. 소방서의 화이트보드에는 작은 질문이 붙는다. “오늘 당신이 만든 0.5초는 무엇인가.” 구급대의 막내는 환자 이송 침대 벨트를 한 번 더 당긴 0.5초를 말하고, 베테랑은 지하주차장 진입 전에 사이드미러를 접지 않은 0.5초를 이야기한다. 반대편, 교정본부의 낡은 공지판에는 다른 문장이 붙는다. “오늘 당신이 고친 한 글자는 무엇인가.” 누군가는 진정서의 ‘처벌’ 대신 ‘조치’라는 단어를 써넣고, 누군가는 셀프 인과관계의 ‘때문에’를 ‘그럼에도’로 바꾼다. 단어들이 방향을 바꾸면 하루의 톤이 달라진다. 톤이 달라지면 행동의 반복성이 바뀐다. 반복이 바뀌면 사람이 소모되지 않는다. 사람은 반복으로 마모되지만, 반복으로 설계되기도 한다.
변하영은 이 모든 장면의 가운데 서 있지 않는다. 그녀는 프레임 바깥에서 스테이플러의 등뼈를 밀고, 번들거리는 북극성 볼펜으로 한 칸을 더 그릴 뿐이다. 어떤 날은 군더더기 없는 강경한 문장을 준다. “계획이 없으면 혼돈이 너를 설계한다.” 어떤 날은 관계의 위치를 가리킨다. “문을 열기 전, 사람을 먼저 본다.” 어떤 날은 쾌락과 고통의 진자를 설명하며, 그 진자가 가진 관성을 이용하는 작은 규칙을 배치한다. “기쁨을 앞당기지 말고, 불편을 앞에 둔다.” 그녀는 이름을 들먹이지 않고도 사상들을 집안의 공구처럼 다룬다. 십자드라이버, 육각렌치, 절연테이프. 누구나 잡을 수 있고, 아무나 쓸 수 있고, 쓰다 보면 손맛이 생기는 것들.
저녁의 하늘은 금속성이다. 출동에서 돌아온 팀은 뜨거운 물로 손을 씻는다. 피부의 기름이 빠지는 느낌, 손등의 상처가 잠깐 저미는 느낌. 박도윤은 거울 앞에서 종이를 다시 펼친다. 감각: 어깨가 무겁다. 생각: 오늘은 잘했다, 그러나 내일은 모른다. 충동: 늦은 밤 화면을 켜서 빈자리를 메우고 싶다. 행동: 모래주머니로 스쿼트 20회, 샤워, 수면 리추얼. 종이는 주문이 아니다. 주문은 현실의 질량을 무시한다. 종이는 질량의 길을 바꾼다. 그는 수첩 맨 끝 페이지에 작은 문장을 추가한다. “남은 에너지를 내일로 이월한다.” 에너지는 크지 않다. 그러나 이월은 복리처럼 작동한다.
교정본부의 밤은 늘 길다. 소등 이후 복도는 고요하지만, 사람의 생각은 소등되지 않는다. 4572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 마지막 칸을 채운다. 감각: 눈꺼풀이 무겁다. 생각: 내일의 나를 믿어도 될까. 충동: 오늘만큼은 예외를 만들고 싶다. 행동: 침상 정리, 물 한 컵, 오늘의 문장 쓰기. 그는 오늘의 문장을 길게 쓰지 않는다. “나는 소모품이 아니다. 나는 기록이다.” 기록은 자신을 물건에서 절차로, 절차에서 의미로 넘겨주는 다리다. 그는 종이를 접어 베개 밑에 넣는다. 그 사소한 움직임이 그의 세계를 재고정한다. 접힌 종이는 분해되지 않는다. 오히려 접혔기 때문에 버텨낸다.
도시의 다른 끝, 불빛 드문 골목에서 통신장비의 전파가 튀고, 아파트 베란다 유리문에 달 착륙선처럼 보이는 빨래집게가 걸려 있다. 라디오 코드들이 교차하고, 서로 모르는 사람들의 호흡이 무음의 합창을 만든다. 누군가는 노란 라인을 밟고, 누군가는 파란 선을 따라 걸으며, 누군가는 사각의 하얀 칸을 채운다. 매뉴얼은 계속 업데이트된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업데이트는 종이 위, 개인의 필압으로 이루어진다. “나는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하려 하는가. 나는 지금 무엇을 할 것인가.” 세 질문이 하루의 전기를 구성한다. 회로가 제대로 연결되면 불이 들어오고, 과부하가 걸리면 차단기가 떨어진다. 차단기가 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것, 그게 바로 살아남는 법이다.
어떤 밤은 아름답지도, 구원스럽지도 않다. 그저 숨이 차고, 화장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 낯설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움직이지 않으며, 손끝에서 바보 같은 선택이 꿈틀거린다. 그럴 때 종이는 “기다려”라고 적는다.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다음 옳은 것을 할 시간을 만들어주는 적극적 행위다. 기다림 동안에 우리는 물을 마시고, 방을 정리하고, 호흡을 세고, 전화를 걸지 않으며, 화면을 켜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경보가 울리고, 문이 열리고,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고, 우리는 우리의 자리를 찾아간다. 자리가 있으면 사람은 덜 소모된다. 자리가 없으면 사람은 곧 도구가 된다. 종이는 자리를 만든다. 작은 사각형 속에.
마지막으로, 종이는 사람들을 서로에게 묶는다. 어느 날, 서해소방서 화이트보드와 교정본부 공지판에 같은 문장이 올라간다. “오늘의 문장: 우리는 감정보다 절차로, 절차보다 의미로 서로를 지킨다.” 그 문장을 쓴 손이 누구인지 아무도 묻지 않는다. 누가 썼든 좋다. 읽혀지는 동안에는 누구의 것이든 된다. 그 문장을 들고 박도윤은 계단참을 오른다. 4572는 같은 문장을 손바닥으로 덮는다. 두 사람의 발소리가 서로 다른 건물의 복도에서 어긋나지만, 같은 리듬으로 진행된다. 어긋남이 리듬을 만든다. 리듬은 사람을 소모하지 않는다. 리듬은 사람을 살아 있게 한다.
서해시의 밤이 깊어지면, 경보음은 어느 순간 멎고, 바람은 칸칸이 나뉜 시간을 쓸고 지나간다. 종이들은 베개 밑과 로커와 공용함 속에서 얌전히 숨을 고른다. 내일 아침 누군가의 손이 다시 펴고, 다시 적고, 다시 접을 것이다. 그 반복은 낡지 않는다. 그 반복은 사람을 낡게 만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짝이게 한다. 소모되지 않는 인간은 거대한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아니라, 작은 칸을 채우는 사람이다. 그는 오늘의 감각을 기록하고, 내일의 행동을 준비하며, 의미를 세 줄로 축약한다. 그의 주머니에는 아직도 접힌 종이가 있다. 그 종이는 지도이고, 계약서이고, 편지이고, 도구다. 그리고 그 종이 위에서, 우리는 마침내 서로의 이름을 더듬지 않고 부를 수 있게 된다.
![[byunhayoung_brm_20250816.png]]
> [!summary] epilogue
> 변하영의 상담은 제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겪는 극심한 압박과 소모를 다루는 일종의 “현장 심리공학”이었다. 불 앞에서 호흡을 잃는 소방공무원, 상전인 재소자에게 모욕당하는 교도관, 폭력과 살인을 가까이 목격한 남자들, 그리고 공허를 섹스나 음주, 중독적 보상으로 메우려는 습관을 가진 이들이 모두 그녀의 정서관찰지 앞에서 멈춰 서야 했다. 그녀는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규정의 언어가 사람들을 억누르는 방패이자 족쇄가 될 수 있음을 알면서도, 구체적인 감각·생각·충동을 적어내려가게 함으로써 개인이 다시 자기 몸과 시간을 붙잡도록 만들었다. 관찰지 위에서 마음챙김은 불안을 늦추는 도구가 되었고, PTSD 응급치료개입은 사건 직후의 과각성을 진정시키는 절차로, 정서중심치료는 수치심과 관계의 균열을 드러내고 치유하는 대화로, 수용전념치료는 사람들이 지키고 싶은 가치를 행동과 다시 연결시키는 다리로 기능했다. 이렇게 상담은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오늘은 큰 소리보다 짧은 말”, “나는 지금 멈춘다” 같은 짧고 구체적인 문장을 반복하는 연습이었고, 그 문장은 불길 속에서 무너지는 남자나, 철문 앞에서 흔들리는 교도관에게 작은 안전핀처럼 작동했다. 변하영이 만들어 낸 공간은, 제복을 입은 이들이 더 이상 침묵과 허세로만 살아남지 않고, 기록과 호흡, 의식과 문장으로 자기 자신을 다시 소유할 수 있는 장소였으며, 그 과정에서 소모되던 남자들이 잠시나마 인간으로 복구되는 장면이 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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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기택, 불이 꺼진 조직 속에서 마지막 불씨를 지키는 자(2025)]]